매일신문

"딴 일만 있다면 운전대 안 잡죠"

장기불황 택시업계

"뼈빠지게 일해도 한달에 100만 원을 벌기 어렵습니다."

법인택시 기사 김모(49)씨는 매일 오전 7시쯤 눈을 비비며 집을 나선다. 하루종일 운전대를 잡다 파김치가 돼 귀가하는 시간은 밤 10시쯤.

하루 14, 15시간씩 일하는 그는 낮에 잠깐씩 졸기도 하지만, 체력이 바닥날까 항상 걱정이다. 그나마 손에 쥐는 돈은 월 100만 원 남짓. 월급 73만 원에 매일 사납금(9만7천 원)을 내고 남은 돈 1만 원을 챙길 때 가능한 액수다. "사람으로 할 짓이 아닙니다. 할 일만 있다면 당장 그만둘 겁니다."

그렇다고 사주가 큰 돈을 만지는 것도 아니다. 택시 40여 대를 갖고 있는 한 법인 대표는 "명색이 사장인데도 수입은 월급쟁이보다 못하다"며 "운전사를 구하지 못해 놀리는 택시들만 돌려도 그나마 나을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택시업계에 불황의 골이 깊어가고 있다. 업계 종사자들은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하소연한다. 거리 곳곳에 택시가 길게 줄을 서 있는 풍경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고사 직전의 택시업계

대구개인택시사업조합 권성배 기획실장은 "아무리 택시가 사양업종이라고 하지만 수익이 너무 적다"고 했다. 개인택시 넘버가격 4천∼4천300만 원, 차 값 1천500만∼2천만 원 등 6천만 원 넘게 투자하고도 한달 수입이 100만 원을 겨우 넘기는 정도라고 했다. 1990년 초반 이후 수입이 거의 늘지 않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하루 12, 13시간은 보통이고 17, 18시간씩 일하는 운전사들이 적지 않다. 김성호(53)씨는 "과로로 누웠다거나 사망했다는 동료들의 얘기를 들으면 가슴이 답답해진다"고 했다. 이 때문인지 매월 팔려고 내놓는 개인택시는 60대가 넘는다. 매년 700명의 개인택시 기사들이 다른 일을 찾아 이직하고 있다.

대구 택시의 수익률은 전국에서 바닥권이다. 택시 수는 모두 1만7천대(법인 6천980대, 개인 1만20대)이고 면허대수당 인구 수는 대구 149명, 서울 141명, 부산 148명, 인천 195명, 광주 169명으로 타 도시와 비교할 때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차율(승객을 태우고 운행하는 비율·2002년 10월 현재)에서는 대구 52.2%, 서울 64.1%, 부산 61.9%, 인천 56.9%, 광주 58.4%로 가장 낮다. 대구시민들의 택시 이용률이 그리 높지 않다는 뜻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짧은 거리를 타는 승객이 대부분인데다 교통정체가 거의 없어 자가용 이용자가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더욱이 오는 9월 지하철 2호선 개통과 10월 버스 준공영제 실시로 지하철-버스 무료환승제가 될 경우 더 큰 타격이 예상된다. 가뜩이나 어려운 택시업계의 숨통을 조일 악재가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요금 인상이 해결책인가?

택시업계는 어려운 업계 사정을 감안해 요금 인상을 추진 중이다. 기본요금 1천300원에서 현재의 1천500원으로 인상된 것이 3년여 전인 만큼 이제 올릴 시기가 됐다는 주장이다. 이달 말쯤 대구개인택시사업조합과 택시운송사업조합은 대구시에 17% 이상의 인상안을 건의할 계획이다. 기본 요금 1천900원, 2천 원, 2천300원 등 3가지 안을 제시하기로 했다.

그러나 대구시는 내년 상반기쯤 돼야 인상을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지하철 2호선 개통과 맞물려 요금이 오를 경우 택시가 시민들에게 더욱 외면받을 수 있다며 업계를 설득하고 있다. 지난 6월 기본요금을 1천900원으로 올린 서울의 경우 손님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바뀌어야 산다

대구시는 업계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군소 회사의 합병을 유도할 계획이다. 167개 법인 중 100대 이상을 보유한 업체가 9개에 불과할 정도로 전체적으로 영세하다. 수백대 이상을 보유한 덩치 큰 법인이 많아야 수익률은 물론이고 종사자들의 임금 및 복지 수준도 향상되기 때문이다.

또 택시 고급화를 통해 버스, 지하철 등 다른 교통수단과의 차별화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지만 제대로 뿌리내리지 않고 있다. 지난 달부터 대형택시가 도입됐으나 비싼 요금(기본 2천500원)으로 인해 아직까지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다음달쯤 건설교통부와 노사가 공동으로 획기적인 택시제도 개선방안을 내놓는다. △놀리는 택시(업체당 대수의 15∼20%)를 일정 자격이 되는 이들에게 빌려주는 리스제 △요금제를 부분적으로 자율화하는 요금상한제 △개인택시 면허의 경우 양도양수 제한(신규), 면허정년제(기존) 도입 등이 포함돼 있다.

대구시 박창대 대중교통과장은 "업계가 더이상 안 된다며 언제까지 무기력함에 빠져 있을 것인가"라며 "관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다양한 서비스 개발과 함께 합병, 자율경영 등을 통해 체질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사진: 택시업계가 만성적인 불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서비스 개발, 합병 등 자구노력이 시급하다. 동대구역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며 길게 줄을 선 택시.

이채근기자 minch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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