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방학은 길다. 6월 중순쯤 기말시험을 치고 나면 8월 말 또는 9월 초까지 두 달이 넘는 자유시간(?)이 주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빠져나간 캠퍼스는 적막감마저 감돌지만 유독 한 곳, 도서관만큼은 그 열기가 식을 줄 모른다. 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도서관은 일년 내내 쉼없이 펌프질을 해대는 캠퍼스의 '심장'과 같은 곳이다.
14일 오후 2시쯤 경북대 중앙도서관 열람실. 대부분의 자리가 찼다. 듬성듬성 주인 없는 빈자리는 방학을 맞아 고향 내려간 학생들의 자리인 듯했다. 2층 열람실. 들어서자마자 마주치는 것은 신문지 칸막이. 주위에서 일어나는 작은 움직임에 방해받지 않고 자신만의 '몰입'을 위해 준비한 처방이다.
달콤한 방학 휴가를 도서관에서 보내는 이들의 하루는 새벽 일찍부터 시작된다. 경북대 도서관의 열람실 개방 시간은 오전 6시부터 밤 11시까지. 1층과 지하 1층 열람실은 방학중에도 자정까지 문을 열어두고 있다.
장명(20·고려대 1년)씨는 "오전 6시 30분쯤 도착하는데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다"며 "오전 9시쯤이면 대부분의 자리가 채워진다"고 했다.
방학이라 학생들의 숫자는 줄었지만 그래도 '명당' 자리를 차지하려면 일찍부터 서둘러야 한다.도서관을 찾는 목적도 다양하다. 부족한 교과 공부를 비롯해 공무원시험 준비, 자격증 취득, 토익 점수 높이기 등 대부분이 열성파 학생들. 그러나 꼭 공부만 하러 도서관을 찾는 것은 아니다. 약속 시간의 틈을 메우기 위해, 또는 데이트, 만남의 장소로 불볕 더위에 도서관만큼 좋은 곳은 없다. 아예 도서관으로 피서를 나온 실속파들도 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서 책 읽는 즐거움이야말로 한여름을 피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것.
오형욱(기계공학과 4년)씨는 "취업에 필요한 토익 점수를 높이기 위해 일주일에 3, 4일 정도 도서관에서 공부한다"며 "학년이나 그 목적에 따라 도서관을 찾는 이유도 갖가지"라고 말했다.
도서관 내 각 층마다 설치되어 있는 게시판은 책 등을 사고 판다는 쪽지에서부터 야학 선생님 모집, 카풀할 사람을 구하는 메모까지 수많은 정보들이 오간다. 도서관의 한 자리는 방학 중에도 쉬지 않고 중요한 정보를 전해주는 중개소가 되고 있다.
도서관의 터줏대감들을 알아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십중팔구는 반바지차림에 면 티셔츠, 그리고 빠지지 않는 것이 슬리퍼 착용. 대부분은 군대를 다녀온 예비역들. 반면 대다수의 여학생들은 도서관에서도 '멋'을 부린다. 간혹 허벅지가 드러날 정도의 짧은 치마를 입고 도서관을 배회(?)하는 여학생 때문에 순간 남학생들의 '몰입'이 깨져버리기도 한다.
침묵이 흐르는 열람실과는 달리 도서관 부근은 활기가 넘친다. 잠시 담배 한 대 피우러 나온 사람들부터,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를 들고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들어오고 나가는 분주한 발걸음들이 활기를 불어넣는다.
밖에서 만난 몇몇 학생들은 도서관의 명물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스마일 맨'이라 붙여진 별명처럼 항상 웃고 다니는 표정의 한 중년의 아저씨. 또 검은 피부 빛에 긴 머리를 한 외모가 마치 브라질의 축구선수를 닮았다 해서 '호나우딩요'라 불리는 또 한 명의 중년 아저씨. 색다른 외모도 외모지만 도서관 주위를 맴돌며 큰 소리로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혼잣말을 하고 다니는 이 아저씨를 모른다면 간첩이라는 것.
공공의 장소인 만큼 지켜야 할 규칙도 엄격하게 적용 받는다. 정숙은 가장 큰 항목. 휴대전화 단속은 필수다. 벨소리를 진동 모드로 전환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무렇게나 놓아둬 덜덜거리는 소음을 냈다가는 주위의 따가운 눈총과 심할 경우 퇴출까지 당하기도 하기 때문.
또 하나의 퇴출 1호는 도자기족들(도서관 자리 맡아주는 사람). 방학 중이어서 다소 여유가 있긴 하지만 적발시에는 퇴출의 불명예를 감수해야 한다.
도서관 자치위원들은 사람이 없는 자리 가운데 3권 이하의 책만 놓여 있거나, 가방만 있는 경우, 또 자리를 비우면서도 메모를 남기지 않는 경우 도자기로 간주, 이들의 색출에 나서고 있다.
도서관 자치위원인 서대규(독어독문학과 3년)씨는 "기본적인 에티켓마저 지키지 않는 얌체족들이 있다"며 "함께 공부하는 장소인 만큼 서로를 위한 작은 배려 등이 아쉬울 때도 있다"고 했다.
최두성기자 ds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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