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네 손가락이 들려준 '천상의 선율'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16일 낮 경주에서는 그 어떤 음악회장보다 감동적인 음률이 울려 퍼졌다. '2005 여성주간' 기념행사로 경북도가 주최하고 경북여성정책개발원이 주관한 '내 마음 속의 보물상자' 무대가 그 현장이었다. 이날 행사에서는 '네 손가락의 천사 피아니스트'라고 불리는 이희아(20·여)씨가 무대에 올라 쇼팽의 '즉흥환상곡' 등 9곡을 연주했다. 이씨는 선천성 사지 기형으로 양손 손가락이 모두 네개 뿐이고 다리가 무릎 아래로는 없지만 열 번 이상의 독주회를 여는 등 활발한 활동으로 주목받는 신예 피아니스트.

이씨는 그러나 지난 13일 충주에서 공연을 하려다 피아노 의자에서 넘어져 오른쪽 다리 복합골절 부상을 입었다. 깁스를 한 채 3개 월 정도 요양해야 한다는 의료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씨는 16일 경주 행사장을 찾았다.

깁스를 한 채 진통제를 맞고 피아노 위에 올랐지만 이씨의 표정만은 그 어느 연주회 때보다 밝았다. 다리를 다친 터라 피아노 페달은 이씨의 어머니 우갑선(50)씨가 대신 밟았다. 청중들은 이씨가 피아노 첫 건반을 누를 때부터 감동에 휩싸였다. 8곡을 연주한 이씨가 앵콜곡으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연주할 때는 모두 일어서서 따라 불렀다. 연주한 이도, 듣는 이도 모두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소중한 존재임을 확인시켜 주는 자리였다.

이씨는 "장애아동 80 가족과의 약속을 어길 수 없었다. 많은 연주회를 가져봤지만 이번 연주가 가장 좋았다"고 말했다. 이날 '희아야, 넌 베토벤이 될 수 있어'라는 강연을 한 어머니 우씨는 "희야는 워낙 선천적으로 밝은 아이다. 오히려 딸 때문에 내가 밝아졌다"고 말해 청중들로부터 해 박수를 받았다.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일선 수석연구원은 "다친 이씨가 참석할 줄은 전혀 몰랐는데, 연주를 하겠다고 전해 와 많이 놀랐다"면서 "연주회 뒤 장애아동과 즐겁게 노는 이씨에게서 천사와 같은 심성을 보았다"고 말했다.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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