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신천(新川)과 샛내

최근 신천에 녹조(綠藻)가 발생하여 많은 시민들이 걱정하고 있다. 선사시대의 신천은 오늘날과 달리 범람으로 형성된 퇴적층이 기름져 일찍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였으니 그 흔적이 지금도 고인돌로 남아 있다. 따라서 어떤 학자는 침산과 연암산에서 발굴된 유물과 아울러 달구벌 문화의 발상지라고도 한다.

그러나 시가지가 확대돼 주변의 농경지가 택지로 바뀌면서 신천은 건천(乾川)으로 변했다. 그 후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 문제가 시정부의 주요시책으로 대두되면서 신천 하수처리장의 물을 끌어올려 유지수를 확보하고, 둔치에 꽃과 나무를 심어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러나 고무 보(洑)에 담긴 물이 썩어 냄새가 나는 등 문제가 발생하자 다시 절반 정도는 금호강물로 채워 수질이 좋아지자 어종이 다양해지면서 많은 종류의 새들이 날아들고, 1급수에만 산다는 수달이 서식하게 되어 죽은 강에서 살아 있는 강으로 변해 시민들의 신천사랑이 더욱 깊어졌다.

이러한 신천에 대해 "정조 때 판관 이서라는 분이 사재로 제방을 쌓고 오늘날과 같은 형상으로 물줄기를 돌려 새로 내를 만들었기 때문에 새신(新) 내천(川), 즉 신천(新川)이라고 한다"라고 그 유래가 잘못 알려져 있다.

중장비도 없었을 그때 공금도 아닌 사재로 하천을 만들 만큼 대규모 토목사업의 추진이 불가능했을 것이며, 또 하나 대구뿐만 아니라, 성주, 의정부 등 다른 지역에 있는 신천(新川)도 모두 인공적으로 만든 하천일까 하는 문제가 제기되고 한걸음 더 나아가 이서가 재임할 때보다 무려 2세기 이상 앞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대구부 산천조(山川條)에 나오는 "팔조령에서 발원하여 금호강으로 유입된다는 신천"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러한 역사서를 볼 때 신천은 오늘날 수성구와 중구 사이에 있는 내, 즉 샛내(間川)를 한자화할 때 새내(新川)로 잘못 표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천은 '새로 만든 내'가 아니라 '~과 ~의 사이에 있는 샛내'이다.

달구벌얼찾기모임대표 이정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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