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와 대립과 반목의 시대인가? 노사가 대립하고, 이익 집단들이 대립하고, 지역 간, 세대 간, 사회 구성 요소들이 분열 대립하는 가운데 원색적, 극단적, 적대적 언어가 난무한다. 상대방의 약점을 찾아내 최대한 모독하는 전술이 사용되며, 때로는 그런 전술의 구사를 위해 거짓 증거와 증언을 조작하고, 그것이 드러나도 속은 사람이 바보라고 조롱한다.
대중 매체와 드라마가 경쟁적으로 성도덕의 파괴를 조장하고, 이혼율은 급등한다. 가정의 약화와 해체는 안정된 가정에서 원만한 인격으로 자라나야 할 다음 세대들의 가슴에 풀기 어려운 깊은 상처와 분노를 남기고 있으며, 총기난사 같은 파국적 결과를 빚기도 한다.
한 페미니스트 학자는 "사회적 정의는 가정의 정의로부터 비롯된다"고 말했다. 흙 반죽 마르기 전에 도자기 모양이 만들어지듯, 인격은 어린 시절에 형성된다. 예를 들어, 부모가 형을 편애하여 어릴 적 사랑받고 싶은 절실한 욕구가 좌절된 사람이 '나는 억울하고, 세상은 부당하다'는 느낌을 뿌리깊이 갖게 되었다. 그 느낌은 평생 동안 따라다니며 감정과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게 된다. 일거수일투족에 항상 작용하는 이런 느낌을 정신치료자인 이동식 선생은 '핵심감정'이라고 이름 붙였다. 모든 사람의 현실지각은 이 핵심감정에 물들어 있다. 억울하고 부당하다는 핵심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사회에서도 이를 예민하게 감지한다. 자기 문제를 극복한 사람이면 해결하도록 작용하겠지만, 응어리가 덜 풀린 사람이라면 분노와 적개심을 조장해 터뜨리기만 할 뿐이라 사회의 고통을 초래한다.
노이로제의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 과제가 모든 증상의 원인이 되는 '억압된 적개심의 해결'이다. 과거에 생존하고 사랑받기 위해 가깝고 중요한 사람에 대한 적개심, 분노를 억압해야 했다. 그것이 경험되고 의식되어 해결될 수 있도록 의사가 도와준다. 그동안 치료자는 환자의 적개심이 환자 자신과 주변 세상에 파괴적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받아주고 담아놔 주는 역할을 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고 긍정적 에너지로 바뀔 수 있게 돕는다. 만약 의사 자신이 해결하지 못한 핵심감정의 지배하에 있다면 환자의 적개심을 감당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갈등을 오히려 조장하게 된다.
정치가는 '사회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의사' 역할을 해야 할 사람들이다. 요즘 세상의 혼란과 분열, 가치관의 몰락과 적대적 대립들은 억압되었던 사람들의 적개심과 분노가 솟구쳐 오르는 현상인가? 그렇다면, 오늘날의 정치가, 사회학자, 운동권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여서 치유하고 활력을 되찾아 번영에 이르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가? 독선 속에서 해결 못 한 자신의 응어리, 증오심으로 혼란과 반목을 오히려 조장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 사회의 정치 성향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근래에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큼 격변하였다. 모든 사회 질서가 그러하듯, 완전하지 못한 기존 질서도 누적된 부조리나 응어리가 있고, 그것이 청소되고 활력을 되찾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혁명은 짧아야 한다. 외과의사는 몇 시간 수술을 한 뒤 일주일 정도 회복되기를 기다린다. 수술 후 위장관 기능의 회복을 알리는 방귀소리를 천상의 음악처럼 기다린다. 만약 입원기간 내내 배를 열고 수술을 계속한다면 환자는 목숨을 잃을 것이다. 혁명의 열기에는 감동이 있다. 그 감동이 사람들을 열광케 하고 영웅적 행위나 리더십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나 혁명의 감동을 영속시키려 하면 코미디로 전락한다. 영도자는 플래카드의 초상화조차 비를 맞으면 안 되고, 유치원생들은 획일적인 표정'동작으로 감동을 연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이로제를 치료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정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인격 문제 해결은 더 어렵다. 그들이 스스로 치료받으러 올 가능성은 희박하므로,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점을 예의 주시하고 검증해야 한다. 정치 지망생들은 원만한 가정에서 정의롭게 자라났으면 좋겠지만, 개인적 응어리가 동기가 되어 정치 운동에 뛰어든 사람이라면,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해 그것이 해결되었는지 살펴야 한다. 적어도 개인적인 응어리가 방해가 되거나 해를 끼치지는 않는 수준이 되어야한다. 자기 수련에 많은 노력을 함으로써, 부조리와 적개심에서 벗어나 안정되고 상호존중과 활력이 넘치는 밝은 사회로 이끌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적개심과 이론으로 파괴하는 게 아니라 사랑으로 현실을 이끌어야 한다.
최태진 최태진신경정신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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