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공부의 패러다임이 바뀐다

서울대가 최근 발표한 통합교과형 논술고사를 둘러싸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본고사다 아니다, 학교 교육을 망친다 살릴 기회다, 사교육 의존도를 높인다 필요없다 등 같은 사안을 둘러싸고 다양한 견해들이 쏟아진다. 학생이나 학부모 입장에선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한 걸음 비켜서서 바라보면 충돌하는 양자 간의 논리에 방법론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지식산업사회가 요구하는 사고력과 창의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곧 공부 방법에 있어서도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교과서에 나온 내용을 외워서 문제 풀이를 하던 시대의 끝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 통합교과형 논술이란

통합교과형 논술고사는 종전의 고전 논술 혹은 일반 논술과 여러 측면에서 차이가 난다. 고전 논술이 동서고금의 고전들을 매개로 인류 보편의 문제에 대한 주장을 펼치도록 요구했다면, 통합교과형은 다양한 제시문과 자료를 주고 여러 논제에 대한 글쓰기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미 여러 사립대에서 실시하고 있는 언어·수리논술, 학업적성평가 등만 봐도 영어 지문, 수학의 도표나 그래프, 현대 철학자나 경영자의 논의 등은 기존 논술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이다. 국어와 영어를 함께 평가하는 문제, 수학 공식의 풀이 과정과 실생활 적용 사례를 쓰는 문제 등 여러 교과 내용을 토대로 창의적 사고력과 분석력을 묻는 문제들이 이미 논술의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통합교과형 논술은 외워서 대비할 수 없고, 단기간의 준비를 통해 해결할 수 없으며, 교과 내용 외에 독서로 쌓은 풍부한 배경 지식과 사고력, 분석력 등을 갖춰야 대응이 가능하다.

◇ 교과서와 수업이 핵심

통합교과형 논술이 기존 논술과 가장 다른 점은 교과 내용을 토대로 한다는 점이다. 고전 논술로 불리는 지금까지의 논술은 현대 사회의 문제나 쟁점이 되는 주제들을 어떻게 분석하고 사고하느냐에 초점을 뒀다.

이에 비해 통합교과형은 말 그대로 고교 교과 내용이 논술의 제재가 된다. 본고사란 비난을 받고 있지만, 통합교과형인 수능과 유사하기 때문에 반박의 여지도 있는 것이다. 수능시험 도입 초기를 되돌아보자. 개별 교과의 내용을 단순 암기하거나 지엽적인 문제 풀이 실력을 심화시켜온 그때까지의 학력고사 대비 형태로는 적응이 쉽지 않았다. 학생들은 대거 학원으로 몰려나갔지만 몇 년이 지나 나온 결론은 간단했다. 교과서의 기본 개념과 핵심 원리만 이해하면 풀 수 있다는 것이었다.

통합교과형 논술은 수능이나 기존의 논술에 비해 한층 어려워질 것이 분명하다. 이에 대한 대비는 교과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다. 가령 사회과에서 '시민단체'에 대해 지금까지는 존재 의의나 역할 등에 대해 교과서와 수업으로만 배웠다면 앞으로는 교과 내용에서 출발해 가까운 시민단체를 직접 찾아가 무슨 일을 하는지 눈으로 보고, 함께 활동해보는 경험 등이 뒷받침돼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 학원보다 학교가 우선

학원들은 벌써 통합교과형 논술 대비 프로그램을 속속 제시하고 있다. 조금만 더 지나면 대형 학원이나 논술 전문 학원은 말할 것도 없고, 소위 골목 학원까지 별별 이름을 내세워 학생들을 끌어들이려 할 것이 분명하다.

이에 반해 학교 교사들은 통합교과형 논술에 대비한 수업이 학교 차원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현재 학교 교육에서는 각 교과를 독립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과목 간 통합 문제에는 대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정은 학원에서도 마찬가지다. 학원들이 아무리 그럴듯한 미사여구로 포장한다고 해도 과목의 경계를 뛰어넘어 사고력과 창의력을 요구하는 유형의 시험에 대한 대책은 꼭 집어 제시할 수 없다.

게다가 학원의 논술 수업은 정형화라는 함정이 있다. 고전을 요약해 읽고, 이를 바탕으로 천편일률적 답안을 만드는 능력을 기르는 것은 오히려 채점에서 불리하게 작용한다.

◇ 쓰기보다 읽기가 중요

논술고사 도입 초기에는 문장의 문법성, 글의 전개 구조, 원고지 사용법 등 쓰기와 관련된 평가의 비중이 높았다. 그러나 지금의 논술고사만 해도 쓰기 실력은 부차적이다. 통합교과형이 되면 더할 것이다. 교과 내용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으며, 관련 배경 지식을 주어진 논제에 적용하여 독창적인 견해를 제시할 수 있느냐가 채점의 포인트다.

여기에 대비하려면 어려서부터 책 읽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중학교까지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폭넓게 읽은 뒤 고교에 진학하면 자신이 지망하고자 하는 전공과 관련된 책들을 집중적으로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조만간 도입될 독서이력철의 내용을 풍성하게 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전공 관련 책들은 대학에서 다루는 수준까지 깊이 접근해야 한다. 아울러 해당 분야의 철학적 문제에서부터 연계 학문 등에까지 독서의 폭을 넓혀야 한다. 이것이 현재의 교육과정이 지향하는 바이며, 지식산업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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