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홀몸노인에 밑반찬 도시락 매주 두번 배달

금용복지회관 주부 10여명 봉사

주 두 차례씩 오는 밑반찬 도시락을 기다리는 가난한 이웃들. 이들은 거동조차 힘든 홀몸노인이 대부분이다. 취재진은 금용복지회관 도시락 배달 봉사자들과 함께 이들을 찾았다.

18일 오전 11시 50분 달서구 성당1동 10여 평의 성인아파트. 왼쪽 눈을 못 뜨는 박성주(82) 할머니와 20년간 정신지체 1급 장애를 앓고 있는 맏아들 김정웅(62)씨가 문 앞에서 도시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봉사자들이 도착하자 두 사람은 "너무 기다렸다"는 말을 반복했다.

배달된 밑반찬은 계란탕, 감자조림, 김무침. 이 도시락은 이들에게 세상 그 무엇보다 반갑고 고마운 선물이다. 박 할머니는 "TV조차 볼 수 없기 때문에 아들과 함께 방에서 얘기하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라며 "매주 두 번 오는 도시락은 천사의 선물"이라고 눈물을 흘렸다.

낮 12시 10분 성당 1동 한 단독주택 2층. 봉사자 두 명이 도시락을 들고 계단을 오르자 벌써 반가운 목소리가 들린다. "아이고! 어서 오이소!"

외손녀(9)와 단둘이 살고 있는 이진갑(74) 할아버지. 사람이 그리웠던지 얘기보따리를 풀어놨다. 2년 전 사위가 과도한 부채와 카드빚에 시달리다 가출했으며 딸조차 심한 당뇨병에 걸려 어디론가 가 버렸다는 사연. 이 할아버지는 손녀의 하루 용돈 300∼500원을 놓고 매일 티격태격 싸운다. 정부보조금 20만 원과 고물을 주워 생기는 수입 7만~8만 원으로 월세 10여만 원, 각종 세금 등을 내야하기 때문에 단돈 몇백 원이 아쉽다. 도시락을 전해준 봉사자들은 '손녀에게 나눠 주라'며 1만 원을 두 손에 꼭 쥐어주고 나왔다. 그는 "반찬은 끼니때마다 조금씩 꺼내서 아껴 먹는다"고 고마워했다.

도시락 봉사자들이 이날 방문한 집은 모두 22가구. 병상에서 거동이 어려운 노인들도 있었으며 청소를 하지 않아 쓰레기장 같은 집도 있었다. 방문할 때마다 문이 잠겨져 있어 그냥 돌아오곤 했던 가정의 노인 중 몇 명은 이미 세상을 떠나 봉사자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백내장을 앓아 앞을 잘 보지 못하는 박종암(68) 할아버지는 수년간 라면과 밥으로 끼니를 때워오다 도시락 배달 봉사자를 만났다. 전남 고흥이 고향인 남덕진(70) 할머니는 가족들이 모두 세상을 떠났다. 남 할머니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도시락을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남은 인생의 유일한 손님"이라고 눈물지었다.

이들에게 사랑의 도시락을 배달하는 금용복지회관 주부 10여 명. 이들은 매주 월, 목요일 아침마다 복지회관 식당에 모여 음식조, 배달조로 나눠 밑반찬을 만든 뒤 11시 30분부터 각 가정을 방문, 도시락을 전달한다. 이들은 지난해 말부터 성당동 일대에 불우한 노인들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이 사업을 시작했다.

보살보리회 주부 배숙자(59)씨는 "처음에는 집 찾기도 어렵고 너무 지저분해 힘들었지만 지금은 집 청소나 빨래까지 해 줄 정도로 보람을 느낀다"며 "소외된 더 많은 이웃들을 찾아 돕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권성훈기자 cdro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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