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상잔의 비극 6.25가 한창이던 어느날. 강원도 첩첩산중의 마을 동막골에 수류탄이 터진다. 이 마을의 주산물은 옥수수, 우스운 실수로 수류탄이 옷수수 헛간에 떨어지자, 터진 것은 수류탄만이 아니었으니, 바로 이 땅에 최초로 팝콘이 탄생한 순간이다.
높게 솟은 옥수수 알갱이에 핀 것은 하얀 팝콘 꽃, 하늘에서는 팝콘 비가 내리고 여기 모인 사람들의 얼굴에는 마냥 순박한 웃음이 퍼져나간다.
습기와 더위로 지친 한여름 휴식같은 영화 한 편이 관객들을 만난다. 굳이 장르로 분류하자면 전쟁 블록버스터. 하지만 1천만 관객 동원에 빛나는 '태극기 휘날리며'와도, 남과 북이 힘을 합쳐 핵무장을 하자는 '천군'과도 거리가 있어 보인다. 국군에 인민군에 미군까지 총출동하지만 이 영화에는 대립도, 살육도, 울부짖음도 그 중심에 없다.
영화의 주된 배경은 전쟁터가 아닌 전쟁의 포화에서 빗겨간 산골 마을 '동막골'이다. 그다지 전략적 요충지도 아니고 워낙 외진 마을인 까닭에 이 곳에서 전쟁이니 총이니 하는 것은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들이다.
국군 표현철(신하균)과 문상상(서재경), 인민군 리수화(정재영), 장영희(임하룡), 미군 스미스 대위(스티브 테슐러)는 각자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하지만 뭔가 알지 못할 힘에 이끌려 이 마을에 흘러든다.
전쟁에 찌들린 이들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것은 일단 당연한 일. 서로 으르렁대던 이들은 멧돼지 잡고, 풀썰매 타며, '강냉이' 튀겨먹으며 어느 새 마을 사람들의 순박함에 동화되어간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잠잠한 마을에도 전쟁의 긴장은 점차 스며든다. 이제 동막골은 이들에게는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낙원이며 이곳의 사람들은 진정으로 보호해주고 싶은 존재들이다. 다른 소속 세 무리의 군인들은 마을을 구하기 위해 연합작전을 시작한다.
분단과 전쟁을 다루고 있지만 다음달 4일 개봉하는 영화 '웰컴투 동막골'(제작 필름있수다)이 담고 있는 목소리는 그다지 높지 않은 편이다. 영화는 6.25 이후 한동안 나왔던 반공 영화와도 다르고, 80년대 이후 작품들에서 보여준 분단의 비극도, 아니면 '쉬리'나 '태극기 휘날리며'의 묘한 형제애도 담고 있지않다.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그리고 그 사이의 사랑에 있다. 밖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어찌보면 아무런 문제가 될 것 없는 이 곳 사람들의 이야기는 풍부한 웃을 거리와 볼거리 그리고 후반부 웅장한 감동과 함께 펼쳐진다.
영화 속 동막골의 사람들은 지금보니 낯설지만 어찌보면 우리들 본연의 모습이다. 함께 밭을 갈고 음식을 나눠먹으며, 낯선 이를 경계하지도 추운 사람에게 옷을 나눠주기를 꺼려하지도 않는다.
이쯤 되니 총부리를 들이대봤자 나오는 것은 '우터(어떻게) 오셨나? 부애(화) 많이 나셨네' 쯤 되는 말. 전쟁이니 총이니 사상이니 하는 것들은 소박하고 아둔해보이는 말투로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것일 뿐이다.
영화가 가식적이지 않고 순수하게 흘러갈 수 있는 것은 정재영과 신하균, 강혜정과 임하룡 등의 탄탄한 연기와 이미 대학로에서 히트를 쳤던 원작 연극의 덕도 단단히 한 몫 하지만 신인 박광현 감독의 차분한 연출력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듯하다.
CF감독 출신으로 '묻지마 패밀리'의 단편 '내 나이키'로 주목을 받았던 그는 '오바'하지 않으면서 동막골의 순박함과 그 속에서의 즐거움을 그려냈으며, 그 위에서야 결국 빛을 발하는 후반 10분 폭격신의 스펙터클을 만들어냈다.
톱스타 한 명 없는 캐스팅에 신인 감독의 작품이지만 영화는 올해 상반기 최고의 이변이자 최고의 흥행작인 '말아톤'의 뒤를 이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배우의 연기와 감독의 연출력, 히사이시 조가 들려주는 서정적인 음악이 이를 든든히 뒷받침해주는 영화의 장점들. 여기에 무엇보다도 세상과의 싸움에 지쳐 쉬고 싶어하는 우리들의 모습까지 돌이켜보면 더욱 그러하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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