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생이니까 우리 나이로 내년이면 일흔이다. 권력의 핵심에서 나락까지 넘나들었다. 쓴맛 단맛 다 본 인생에 지쳤을 법도 하다. 그러나 김밥 한 줄을 나눠 먹으며 3시간 가까이 계속된 인터뷰 내내 뿜어내는 열정은 여전히 뜨겁다. 백발 머리도 염색을 했다. 왕년의 책사 허화평(許和平)은 아직 늙지 않았다.
드라마 '제5공화국'이 화두가 됐다. 드라마에서 가장 정의로운 캐릭터로 그려지지만 불만이 많다. 당시 사람들을 비하하고 왜곡한 부분이 화나게 한다. 군사 반란으로 규정된 12·12 사태의 원인이 된 참모총장 연행은 상관이 아니라 혐의자를 체포한, 합수부의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말문을 연다.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는 강창성 장군 부분 및 나이가 세 살 정도 많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인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에게 언니라고 하는 부분 등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지금 드러내 놓고 말하는 5공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심지어 "탄생해선 안 될 정권"이었다는 혹평까지 한다. 그렇다면 '5공의 설계자'로 불리던 그는 5공화국의 역사적 의미를 어떻게 볼까. "징검다리 정권"이라고 표현한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독재 30년이 끝난 뒤 민주화로 가는 과정의 공백기에 민주 발전의 토대를 이뤘다는 자평이다.
당연히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평가는 "성공적인 대통령"이다. 전 전 대통령이 만일 권력에 미친 독재자였다면 죽음을 각오하고 제발로 걸어 나가지 않았을 것이란 말도 덧붙인다. 그 자신 5공 초기 청와대를 떠난 것도 권력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도자의 결정권을 존중하고 갈등을 일으킬 필요가 없었기에 나갔다며 구체적인 대답은 "전 전 대통령의 몫"이란다.
5공의 평가를 놓고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 모두 서로를 인정하자고도 한다. 물적 토대가 없는 민주화는 공허하며 그들도 독재에 대해선 책임을 지겠다고 한다. 영원히 지고지순하다는 것은 독선이라며 더이상 민주화를 내세우지 말라고도 한다.
미국으로 갔다가 6공 들어 현대사회연구소 소장을 맡았다. 지금 이름이 '미래한국재단'으로 바뀐 연구소에서 여전히 소장을 맡고 있다. 외부 전문가를 통해 3개 프로젝트를 준비한다. 개헌, 정치개혁, 정부개혁 세가지가 그와 재단이 추구하는 프로젝트다.
그가 보는 권력의 속성은 뭘까. "돈과 같다"는 게 대답이다. 다만 돈보다 권력은 더 위험하기에 돈과 마찬가지로 내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면서 "권력은 행사해야 한다"고 정의를 내린다. 과도하면 폭력이 되지만 쓰지 않으면 나라가 흔들린다는 것이다.
"우익은 먼저 우익 내부부터 비판하지 않으면 존재 가치를 잃는다"며 특정 정당에 휩쓸린 대구·경북이 변화를 거부하는 몸짓을 비판한다. 감정에 치우치기보다는 심각하게 고민할 때라고 본다.
포항 출신으로 포항중·고를 거쳐 육사(17기)를 졸업했다. 담배는 아예 안하고 술도 취하지 않을 정도만 한다. 미국서 성공회 신부가 된 아들은 군 복무중이다. 시간이 나면 책을 읽고 메모를 한다. 몇해전 법과 질서,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가슴으로 썼다는 저서 '지도력의 위기'를 선물로 주면서 "읽지 않을려면 가져가지 말라"고 한다. 여전히 당당하다.
서영관 논설위원 seo123@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