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도·감청-X파일 의혹과 정국

한나라, '구멍인사' 또 불지피나

김영삼(金泳三) 정부 시절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가 불법도청팀을 가동하고, 당시 중앙언론사 고위인사와 대기업 고위 임원이 97년 대선자금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는 'X파일의 실체'가 공개되면서 정국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올 조짐이다.

불법도청 자체는 8년전에 벌어진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X파일의 대화 주인공들로 추정되는 인물이 현재 대기업과 현 정부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다 대선자금과 관련한 내용중에는 참여정부가 인적 자산과 법통을 계승한 '국민의 정부'와도 관련있는 대목이 포함돼 있기 때문.

특히 재벌과 정치권간의 어두운 정경유착의 그림자가 지면위에 노출됐다는 사안의 휘발성과 X파일에 나오는 한 당사자가 현 정부의 고위직에 재직중이어서 도덕성 및 인사검증 논란도 불거질 개연성이 높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21일 성명을 내고 정부의 진상규명과 함께 "검찰은 사실관계를 철저히 조사해 불법 정치자금수수, 불법 도청 등 범법사실이 밝혀질 경우 엄정히 처벌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이 같은 여론을 반영하듯 정치권도 불법 도청 문제와 관련해서는 여야 구분없이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하지만 불법 도청에 관한 여야의 입장은 각기 초점을 달리하고 있는 형국이어서 하한정국을 뜨겁게 달굴 소재로 비화될 소지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열린우리당은 전병헌 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국민의 정부는 안기부를 환골탈태시켜 국익을 위한 정보기관으로 개혁해 새롭게 거듭나게 했고, 참여정부는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로 국익중심의 정보기관으로 사실상 독립적으로 운영했다"면서 YS정부와의 차별화를 시도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YS의 상도동측은 "당시 청와대는 (안기부의 불법도청을) 몰랐다"고 해명하며 안기부의 독자적인 도청 개연성을 시사하고 나섰다.

한나라당 또한 국민의 정부 시절에도 국정원에 의한 도청의혹이 있었다고 주장하며 이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할 태세여서 불법도청 문제는 정치권의 이전투구의 소재로 확대재생산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97년 대선자금 문제와 관련해서는 불법 도청 내용이 사실로 드러나 불법 정치자금 제공 논의나 실제 관련 정치인들의 금품 수수가 밝혀진다 해도 정치자금법의 공소시효가 3년이어서 정치인들을 처벌하기도 어렵다는게 법조계 중론이다.

하지만 정치인들에게 건네진 금품이 정치자금이 아닌 뇌물에 해당한다면 액수가 5천만 원을 넘을 경우 특가법 뇌물죄의 공소시효 10년을 적용받아 처벌도 가능할 수 있다는 의견이 많아 검찰수사가 시작될 경우 정치권은 또 다시 2002년 대선자금 수사 당시와 같은 엄청난 소용돌이속에 휩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사건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대목은 X파일의 대화 당사자중 한명이 현 정부의 고위직에 있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물론 이 당사자는 "불법으로 도청된 자료에 근거해 사실로 확인되지도 않은 불명확하고 부정확한 내용"이라고 강력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으로서는 현 정부의 인사검증 시스템을 공격하려는 소재로 적극 활용하고 나설 개연성이 매우 높다고 볼 수 있으며, 특히 여당이 YS정권때의 불법도청문제를 소재로 대(對) 한나라당 공세를 강화할 경우 이에 대응하는 카드로 활용할 여지가 충분하다는게 정가의 중론이다.이에 따라 공식적인 반응을 삼가고 있는 청와대가 최종적으로 어떤 결정을 내릴지도 주목되는 대목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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