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가마솥 더위로 도시 전체가 처져있다. 이때쯤이면 색다른 긴장감이 요구되기 마련. 영원한 납량특집 '공포'를 통해 더위를 잊자. 여기에 직접 귀신과 맞짱(?)뜨려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주말, 색다른 공포를 즐기려는 그들과 함께 귀신과 맞장을 뜨러갔다.
오후 7시 대구 오페라하우스 앞. 무작정 따라가겠다며 약속 장소에 나오긴 했지만 마음이 영 내키지 않았다. 기대보다는 두려움으로 마음이 뒤숭숭. '별 짓을 다한다'라며 쓴 웃음을 지을 때쯤 한 젊은이가 "혹시 매일신문 기자 아니예요?"라며 말을 건다. 다음 카페 '고스트 헌터' 대구·경북 팀장 쪼김밥(27·본인이 실명 공개를 꺼렸다)씨. 흉가체험 카페 운영자라 무척 특이할 것 같았는데 복장은 선글라스에 하얀색 티셔츠의 바캉스 컨셉이다.
12명의 회원들이 모두 모이자 목적지 부산으로 출발. 가는 길에 회원들은 경험담을 늘어놓는다.
쪼김밥씨의 충북 음성에서의 체험담. "한 흉가에 들어갔을 때였어요. 같이 간 20대 남자가 갑자기 빙의(다른 영(靈)이 몸 속에 들어오는 것)가 걸리더라구요. 아줌마 목소리를 내면서 우리를 막 꾸짖는 거예요". 믿거나 말거나. 옆에 있던 맏형격인 이강룡(32)씨는 한술 더 뜬다. "그런 일이 가끔 있어요. 재수 없으면 귀신이 따라붙기도 한다고요". 겉으론 웃어넘겼지만 은근슬쩍 밀려오는 불안. 윽~.
부산팀과 합류한 뒤 대연동 주택가의 한 흉가 앞에서 잔뜩 폼을 잡고 체험에 하나둘 나설 찰나 예기치 않은 사태가 발생했다. 옆집에 사는 사람들이 "거기 뭐 볼 것 있다고 난린겨?"라며 딴지를 건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계획 수정. 운영진들은 이런 사태에 꽤나 익숙한지 즉각 또 다른 체험지를 찾아낸다.
어영부영 시간을 낭비한 바람에 벌써 새벽 1시30분. 이러다 날 새겠다싶어 모두 서둘렀다. 시내에서 조금 벗어나 굽이굽이 샛길을 따라 도착한 곳은 용호동의 한 동굴 앞. 수석운영자 이동욱(27)씨가 "들리는 이야기로는 이 동굴은 임진왜란 때 만들어졌대요. 6.25때는 빨치산 무기저장소로 쓰였다 지금까지 방치되고 있다네요. 정말 음산해 공포 체험하기엔 그만인 곳이죠"라며 분위기를 띄운다.
동욱씨의 겁주기(?)에 모두들 체험하기도 전에 잔뜩 겁을 먹곤 한참을 머뭇거린다. 마침 용감하게 나서는 사람이 있었다. 생김새부터 단단한 김성민(28)씨는 동굴 체험을 마치며 나와 "그냥 재미있었다"라며 무덤덤한 표정. 그러나 이번이 처음이라는 허신명(24)씨는 식은 땀을 잔뜩 흘리며 나왔다. 체험하기 전엔 무척 재미있을거 같다고 큰소리치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얼굴마저 창백해져 있다. "뭔가 싸늘한 느낌이 들었어요. 옆에 누군가 같이 간다는 느낌이었어요". 거의 울기 일보 직전.
새벽 3시. 취재만 하면 된다고 꿋꿋이 버티던 기자도 결심을 해야했다. "저도 들어갈래요". 무섭긴 해도 동굴 내부가 너무 궁금해서이다. 카페 회원들 사이에서 영매체로 소문난 쪼김밥씨와 파트너로 당첨. 엉거주춤 입구에 서자 몸이 장승처럼 뻣뻣해졌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뿐인 동굴속을 달랑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한발짝 한발짝. 코 끝을 찌르는 퀴퀴한 냄새와 끈적끈적한 바닥이 소름을 돋게 만든다. 기분 나쁘게 공기까지 싸늘한데 쪼김밥씨가 불빛을 여기저기 비추자 마치 누군가 앉아있을 듯한 두려움이 온 몸을 조여온다.
들어간지 얼마 안가서 "그만 나갑시다"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온다. 피티병을 가져오라는 미션은 아예 머리 속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그저 이 순간을 벗어나자는 생각뿐. 갑자기 쪼김밥씨가 "뒷덜미가 서늘하다"라며 목소리를 내리깐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제발 좀~"하며 애써 외면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조금의 인기척에도 놀라 까무러칠 듯한 분위기속에서 정신없이 걷기만 하다 입구가 서서히 보이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10여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10년을 버틴 것 같은 느낌. 입구를 나오자마자 너무도 약한 내 모습이 찔려 얼굴이 붉어졌다. 그래도 무서운걸 어쩌랴.
전창훈기자 apolonj@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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