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는 22일 뉴스데스크를 통해 '도청 테이프' 사건과 관련해 전날과 달리 집중적인 보도와 함께 앵커의 코멘트대로 전체 뉴스시간의 3분의 2를 할애하는 '물량 공세'를 펼쳤다.
대화내용을 도청당한 당사자들의 실명은 물론 이들의 대화 속에 거론되는 정치권 인사들의 실명까지 전격 공개하는 등 강경한 톤으로 일관했다. 이 사건을 처음 보도했던 21일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전날 뉴스시간에는 테이프속 대화 당사자로 거론된 두 인사가 제기한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원의 '방송조건'을 받아들여 별다른 내용없이 밋밋한 기사를 내보냈던 것과는 달리 옛 안기부 내부 보고 문건을 중심으로 총 20여건에 이르는 분야별 스트레이트와 기획 기사를 집중적으로 처리했다.
MBC 보도국측은 이에 대해 "어제도 충분한 기사를 준비했으나 오후 8시께 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원의 결정에 따라 (미리 준비한) 프로그램을 수정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못박았다. '재벌의 압력설'이나 'MBC가 몸을 사린다'는 세간의 의혹을 일축한 것.
22일 MBC '뉴스데스크'는 맨 첫 머리에 이 테이프를 입수한 것으로 알려진 이상호 기자를 등장시켜 문제의 테이프를 보여줌으로써 '도청 테이프의 존재'를 확인시켰다. 이어 이 기자는 97년 세 차례에 걸쳐 작성됐다는 옛 안기부 내부 문건을 들고 나왔고, 입수 경위와 함께 지금껏 MBC가 보도하지 못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작년 10월 '대기업의 비자금건인데 보도할 자신이 있느냐'는 제보자의 제안이 들어왔고, 당시 '신강균의 뉴스 서비스 사실은…' 팀의 데스크와 상의해 취재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이 제보자는 전 안기부 직원과 친분이 있는 사람이며, 두 차례 미국 방문 끝에 올 1월 이 테이프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지금껏 MBC가 보도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서는 "사안이 사안인 만큼 테이프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이 오래 걸렸다. 성문 분석 결과, 도청테이프 속의 목소리가 해당 인사들의 목소리와 일치하고, 편집 조작된 흔적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통신비밀보호법이란 실정법과 국민의 알 권리 사이에서 고민했지만 두 인사가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을 내 원음 및 실명 공개 금지 등의 결정문이 내려져 MBC가 보도를 못하고 있는 사이 다른 언론을 통해 일부 보도돼 국민들의 의혹이 고조된 상태에서 더이상 미룰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보도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실제 MBC의 보도 태도는 예상 이상으로 적극적이었다. 이날 오전까지만 하더라도 홍보실을 통해 10건 정도의 기사를 내보낸다고 공식 발표했으나, 오후 2시 보도국 편집회의를 통해 총 20건의 기사를 제작키로 결정한 뒤 스트레이트와 기획성 기사 등 준비한 물량을 한꺼번에 쏟아부었다.
MBC 홍보실 관계자는 "오늘 뉴스를 계기로 테이프 내용과 관련한 보도는 전부 털어버리고, 이후에는 각계 반응 위주로 보도할 것"이라고 밝히기까지 했다.
이날 준비한 취재 내용을 대부분 보도한 것은 MBC에 쏟아진 각계의 시선과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 MBC 인사는 "이 사건 관련 자료를 반드시 MBC만 입수한 것은 아닌데도 지난 1월 '신강균 팀'의 명품 핸드백 비리사건이 터졌을 당시 이상호 기자가 '미국 출장건'에 대해 언급하면서부터 MBC가 주목을 받아왔다"고 털어놓았다.
이 기자의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MBC는 특별취재반을 구성해 테이프 관련 내용을 취재해왔으나 법적 문제에 부딪혀 지난달 '보도 보류'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이런 결정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외압설' 등을 제기하자 MBC는 더욱 곤혼스러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불법도청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취재를 계속 해왔으나 법적으로 문제가 없을 만큼 이를 입증할 만한 취재가 이뤄지지 않아 고민중이었던 것.
이런 가운데 21일 조선일보 기사가 터져 나왔다. 조선일보는 '안기부 불법 도청' 사건을 핵심으로 하는 한편 MBC측이 이와 관련된 테이프를 입수했다고 보도해 또 다시 MBC가 입수한 테이프의 내용에 새삼 관심이 모아지게 됐다.
더욱이 MBC가 법원의 결정 취지를 살려 기사를 소극적으로 처리한 반면 같은날 KBS '뉴스9'가 자체 입수한 녹취록을 근거로 오히려 적극적인 보도에 나서면서 MBC는 다시 한번 당혹스러운 상황을 맞게 됐다.
이처럼 주변 상황은 꼬여가고 테이프 공개에 대한 각계의 무언의 압력을 거세지는 가운데 MBC는 법원이 제시한 전제조건을 충족시키는 선에서 한꺼번에 내보내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해당 기업의 공세도 고려 사항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1일 MBC가 보도 결정을 내리자마자 곧장 법원에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준비된 대응을 하는 기업의 반응으로 볼 때 보도를 며칠 동안 나누어서 할 경우 또 어떤 대응으로 나올 지 모른다는 판단이 고려됐다는 것.
MBC 홍보실측은 "의혹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지 만 하루도 안돼 또다른 각종 의혹들이 무수히 제기되는 상황에서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고 오해를 풀기 위한 결정이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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