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달탐험의 역사

달탐험의 역사/레지널드 터닐 지음/이상원 옮김/성우 펴냄

"이것은 나 한 사람이 내딛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 전체에 있어서는 위대한 발걸음이다."

1969년 7월 20일 오후 1시 17분 40초(미국시간). 닐 암스트롱이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도착해 남긴 이 말은 인류가 우주 개발의 새 장을 여는 순간의 감격을 전한 메시지였다. 이 말은 동시에 우주 선점을 둘러싼 미국과 소련의 선점 경쟁에서 미국이 승리를 확정짓는 순간이기도 했다.

유인비행 등 처음엔 소련이 앞서

냉전시대 미·소는 치열한 우주 전쟁을 벌였다. 먼저 웃은 것은 소련이었다. 소련은 1957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렸다. 이 소식을 접한 미국은 발칵 뒤집혔다. 미국은 자존심 회복을 위해 온 힘을 쏟았다. 미국이 소련에 맞서 인공위성 익스플로러 1호를 쏘아올린 것은 그로부터 4개월 뒤였다. 미국은 서둘러 NASA를 설립하고 유인 궤도 비행을 하는 머큐리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소련은 1961년 유리 가가린을 세계 최초로 우주 유인 비행에 성공시키며 또 다시 미국인의 자존심에 생채기를 남겼다. 급기야 케네디 대통령은 18일 후 "60년대가 끝나기 전에 인간을 달에 착륙시켰다가 무사히 지구로 귀환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대한 소련의 응답은 "최초의 미국인이 달에 발을 내딛는 순간 자신들이 마중을 나가겠다"는 소련 우주 비행사 샤탈로프의 허풍 섞인 단언이었다. 샤탈로프의 이 말은 NASA 예산을 수억 달러나 올려주는데 기여했다. 이것이 미국으로 하여금 최후에 웃게 한 견인차가 된 것은 물론이다. 미국은 60년대가 저물기 전인 1969년 7월 아폴로 11호를 달에 보내 케네디의 약속을 실현한다. 당시 아폴로 11호 달 착륙선의 이름은 미국을 상징하는 '이글(독수리)'호였고 사령선의 이름은 미국의 자유와 정의를 나타내는 '컬럼비아'였다.

하지만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이후 NASA의 예산은 지속적으로 삭감된다. 달 착륙을 통해 정치적 이득을 챙길 만큼 챙긴 닉슨은 '아폴로 비행이 계속되게 하겠다'던 약속을 금새 뒤집는다.

'아폴로 11호'로 미국의 최종승리

이 책은 스푸트니크 충격에서부터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까지 달 탐사가 시작된 배경에서부터 머큐리 제미니 아폴로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미국의 달 탐사 프로그램과 미·소 우주 경쟁의 주요 사건들을 BBC 우주항공 전문기자가 정리한 것이다. 저자 터닐은 근·현대사를 통틀어 유례 없는 기술적 도전이었던 NASA의 달 탐사 프로그램은 "냉전시대 미국의 국가적 위신을 제고하고 군사적 패권을 지키기 위한 국가적 프로젝트였다"고 분석한다.

저자는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뿐만 아니라 실패했든 성공했든, 언론의 주목을 받았든 잊혀졌든 달 탐사 계획의 전반을 훑고 있다. 특히 통제 센터와 우주 비행사들의 교신 내용, 저자가 BBC에 입사후 30년에 걸쳐 보도한 기사 내용 등을 인용해 우주 비행의 순간을 흥미진진하게 되살렸다.

책은 베르너 폰 브라운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NASA와 우주개발을 이야기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원래 그는 제2차 대전 당시 유럽을 공포에 떨게 한 V2 로켓의 개발자였다. 그는 독일의 패전이 임박하자 뛰어난 정치적 교섭력을 발휘해 전쟁 포로에서 미국 마셜연구센터 소장으로 변신한다. 그는 미국에서 새턴 로켓을 개발해 인간을 달에 올려 보내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NASA 달 탐사 계획의 막후 인물이었다.

교신 내용·비행사 식단까지 다뤄

저자는 또한 유인 우주 비행을 위해 동물 실험의 대상이 된 침팬지와 원숭이, 달 착륙을 이뤄내기 위해 헌신한 NASA의 주요 인물들, 심지어 방귀가 자꾸 나오게 만드는 우주비행사들의 포타슘 함유 식단까지, 때로는 시시콜콜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달 탐사와 관련된 온갖 이야기들을 빠짐없이 풀어놓았다.

정창룡기자 jc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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