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상투 이야기

상투는 옛날 성인 남자들이 꾸미던 머리모양이다. 추계·수계라고도 한다. 조선 중기 이후 조혼 풍습이 퍼지면서 10세 안팎의 소년이 관례를 치러도 상투를 틀면 어른 대접을 했다.

머리를 땋아 길게 늘어뜨린 총각들이 결혼을 하거나 관례를 올리면 머리카락을 끌어 올려 정수리 위에 틀어 감아 삐죽하게 만들고 거기에 동곳을 꽂아 고정시킨 다음 망건(網巾)을 썼다. 동곳은 금·은·구리 등으로 만들었으며 망건은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않기위한 것. 망건 앞 이마 부분에는 갓을 고정시키기 위해 풍잠(風簪)을 달았다.

살쩍밀이란 것도 있다. 상투를 틀고 망건을 쓸 때 관자놀이와 귀 사이에 난 머리털, 즉 '살쩍'이 흩어져 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 망건 속으로 밀어 넣을 때 쓴 물건이다. 대나무나 뿔(玳瑁·犀角 등)로 만들며 넓이 1.5cm, 길이 8~10cm 정도로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머리를 정돈했다.

왕과 사대부 집안에서는 상투관이란 머리장식품도 사용했다. 뿔·나무·종이·가죽에 흑칠을 하여 만들었으며 머리숱이 적은 노인들이 쓸 때는 검은 종이나 베로 만들었고 대개 원유관(遠遊冠)이나 양관(梁冠)을 축소한 모양을 닮았다.

상투를 틀 때 머리카락이 많으면 열이 발산되지 않아 정수리부분을 깎아내고 나머지 머리만을 빗어올려 트는 것은 '배코친다'고 한다.

1895년(고종 32년) 단발령이 내리자 많은 선비들은 "신체발부는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훼상(毁傷)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이라는 유교사상을 내세워 거세게 반발했으나 결국 신시대의 사조에 밀려 사라지게 됐다. 봉화·마경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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