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제의 저자-장편 '개' 펴낸 김훈

"나는 개발바닥의 굳은살을 들여다보면서 어쩌면 개 짖는 소리를 알아들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세상의 개들을 대신해서 짖기로 했다. 짖고 또 짖어서, 세상은 여전히 고통 속에서 눈부시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었다."

소설가 김훈씨가 신작장편 '개'를 출간했다. 냉혹한 역사적 현실 앞에 던져진 고독한 무인(武人)의 실존적 번뇌나, 무너지는 왕국 앞에서 예술의 진정성을 찾아 국경을 넘#는 한 늙은 예인의 삶을 잔혹하고도 아릅답게 그려냈던 김훈. 그가 이번에는 저잣거리의 평범한 한 마리의 개에게 시선을 돌렸다.

칼과 악기를 들여다보던 눈으로 굳은살 박인 개의 발바닥을 들여다봤다. 오랫동안 인간의 곁에서 인간과 더불어 살아온 덕분에 이제는 인간의 표정까지 닮아버린 개의 자리로 돌연히 내려온 것이다. 우리가 미처 눈여겨보지 못했던 삶의 풍경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개'는 작가의 생명에 대한 깊은 통찰이 빛을 발하는 소설이다. 날것 그대로인 두 발바닥과 몸뚱이 하나로 척박한 세상 속을 뒹굴며 주어진 생을 묵묵히 살아내는 진돗개 '보리'의 세상살이…. 작가는 이를 통해 생명을 지닌 것들이라면 누구나 감당할 수 밖에 없는 살아간다는 일의 지난함과 그 속에 숨겨진 보석처럼 빛나는 생의 의미를 잔잔하고도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더불어 작가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은 숫개 보리의 눈에 비친 인간세상의 부조리들, 즉 덧없는 욕망과 집착, 의미없이 떠도는 말들, 그로 인한 인간의 약함과 슬픔 역시 놓치지 않는다.

우리 주변 어느 곳에서나 만날 수 있는 흔한 개의 발바닥에 단단하게 박여있는 굳은살을 바라보고 또 어루만지며 그 안에 내재된 한 생명체의 고단한 삶의 흔적과 꿈의 기록들을 읽어내는 것이다.

'개'는 부딪치고 깨어지고 또 견디고 기다리며 눈앞의 삶을 건너가야 하는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아름다운 생의 찬가이다. 작가가 연민어린 눈길로 들여다보고 어루만지는 버려진 개의 발바닥은 삶을 지탱해온 굳은살 박인 자신의 손바닥이기도 하다. 아울러 현재의 생을 살아가는 우리의 고단한 어깨이기도 할 것이다.

'개'는 젊은 날의 추억과 깨달음의 힘으로 완성된 빼어난 성장소설이다. 인간에 대한 연민과 세상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긴 소설 '개'는 한 마리 진돗개를 통해 김훈이 들려주는 충만했던 젊은 날의 기록이기도 하다.

들판을 뛰노는 철부지 강아지 보리에게서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찬 '악동' 김훈을 만날 수 있다. 당당한 청년 보리가 욕망하고 좌절하고 그러면서 깨달아가는 세상은 젊은 날의 김훈이 건너온 삶이기도 하다.

소박하고 단아한 문장이 따뜻하게 응축된 서정으로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개'는 소설가 김훈의 소설세계가 또다시 새로운 소재와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되어 나갈 것 같은 즐거운 예감을 담고 있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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