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학 분야의 권위자인 김열규 교수는 긴 학문의 여정 끝에 지역 대학에 석좌교수로 초빙되어 인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일련의 강연을 진행했다.
노 인문학자의 관심은 어김없이 사이버 공간까지 확장되었다. 김열규 교수는 '고독한 호모 디지털'(2002)에서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가상공간의 정보 하이웨이, 길은 사방팔방으로 나 있으나 광장은 없다. 익명의 만남은 있으되 참 만남은 없다."
마우스를 클릭할 때마다, 이동통신 기기의 단추를 누를 때마다 새로운 만남이 생긴다. 그 만남은 더 이상 '설레임'이 아니라 습관이 되어버렸다. 오래된 연인 사이에서 사랑한다는 말조차 습관이 되어버리듯, 아침에 지갑을 두고 나온 것을 알면 그냥 출근하고 등교하지만 휴대전화를 두고 나온 것을 알면 바로 집으로 되돌아간다.
학교나 직장에 지각도 불사하는 '호모 디지털'은 잠시라도 접촉이 끊어지면 잊혀졌다는 불안감, 고립되었다는 무서움에 입술이 탄다. 다시 '로그인'이 되었을 때, 여전히 오가는 메시지는 대부분 공허하고 만남은 겉돌고 있다. 몸으로 부딪히고 눈을 들여다보며 대화하는 광장은 없다. '소통'은 소통이 아니라 실은 단절이다.
우리는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하나의 점이다. 다른 점과 무수히 엮어지는 선들로 만들어진 '거미줄'(web)이 어디까지 뻗혀져 있을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그 '점'이 거미줄에서 튀어 나오면 그 점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소통의 매트릭스에서 빠져 나와 버렸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소통이 실은 단절이라면 거미줄에서 한번쯤 탈출해 보자. 웹 브라우저를 끄고, 휴대전화 전원도 꺼보자. 혹시 아는가. 아직도 우리에게 인간됨이 남아 있다면 모든 것이 off로 된 상태에서 비로소 우리의 자아가 다시 얼굴을 내어 밀지. 진정한 소통은 자기 자신과 먼저 시작되어야 한다.
박일우 계명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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