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동 별미 민물고기

안동으로 가는 여행은 언제나 즐겁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감탄했다는 선비의 고장. 당일치기로는 힘들 정도로 볼거리들이 많은데다, 먹을 거리 또한 만만찮다. 헛제삿밥, 안동식혜, 안동찜닭, 건진국수…. 이미 이런 음식들에 익숙한 분들에게 하는 제안, 입맛 돋우는 민물고기 집이다.

남안동IC로 들어가 안동세무서 앞에 서면 대각선 맞은편으로 작은 입간판이 하나 보인다. '물고기식당'(054-859-2673). 이름부터 재미있다. 양옆 건물 사이 좁은 길 안의 허름한 한옥 집이다.

벽에 붙여진 메뉴판도 간단하다. 은어 1인분 1만원, 피리(피라미) 1인분 8천원, 빙어 1인분 8천원(밥값 포함). 미식가들은 이미 눈치를 챘을 듯. 바로 민물고기 전문점이다. 하지만 강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느 식당과는 차원이 다르다. 민물고기만 취급하지만 흔한 매운탕은 아예 내놓지도 않는다. 튀김도 단골이 특별 주문해야 가능하다.

"은어는 찜으로, 피리는 지짐으로 내놓지예."

안주인 임경숙(60)씨는 귀한 음식인 은어 찜은 손님 접대를 하러 오는 이들이 많이 찾는다고 했다. 벌건 고추장 양념으로 뒤덮인 피리 지짐은 충청도식 '도리뱅뱅이'(피리를 팬에 빙 돌려놓고 기름에 튀겨 고추장 양념에 조린 음식)와는 또 맛이 달랐다. 피리에 고추장, 된장, 고춧가루, 마늘 양념과 풋고추, 청량고추를 적당히 썰어 넣어 지져낸 것. 입안이 화끈할 정도로 매콤하면서도 뒷맛은 약간 달짝지근했다. 설탕을 안 넣어도 꼬불꼬불 못 생긴 토종 청량고추가 약간 단 맛을 내는 것이란다. 뼈째 먹어 칼슘의 보고인 피리는 비린내나 흙 냄새도 나지 않고 술 안주, 밥 반찬으로도 훌륭했다. 구수한 청국장과 함께 따끈따끈한 냄비 밥과 숭늉으로 시장기를 채우고 나니 안 주인의 얘기가 귀에 들어왔다.

"안동댐을 세운다고 수몰된 예안면 '배나들'이 남편의 고향이지예."

평생 살던 마을이 수몰된 뒤 7만원 사글세 방에서 들일을 도우며 살다가 시작한 식당. 처음엔 국수 집을 하며 반찬으로 내놓던 피리 지짐이 반응이 좋아 민물고기 전문식당으로 바꾼 지 10여년이다.

"옛날부터 시어머니가 하던 방식대로 내놓는 음식일 뿐입니더."

예로부터 산자수명한 예안면은 석빙고가 있던 지역. 수몰로 인해 지금의 안동댐 민속경관지로 옮겨져 있지만 석빙고는 독특하고 담백한 맛으로 임금님 진상품으로 올려졌던 안동지방 은어를 신선하게 보관하는데 이용됐다고 한다. 물이 맑아 계절마다 먹고 즐길 수 있는 민물고기가 넘쳐나는 낙동강에 사는 사람답게 이 식당 주인 강신한(66)씨는 민물고기를 잡는 '귀신'이다. 투망어업 허가를 받아 하루에만 20, 30㎏씩 민물고기를 잡아 올린다. 도산서원 언덕을 넘어 왕모산성에서 조금 더 가면 산·바위·물이 기막히게 어우러진 경치 좋은 곳에서 깨끗한 민물고기를 낚는다.

"쓸데없이 취재에 응했다"며 유유자적 마시는 낮술을 방해받고 싶어하지 않는 강씨 대신 기자 일행을 안내한 아들 강순석(29)씨는 "특히 길안천 지역은 아이들이 놀기 좋게 수심도 얕아 여름 휴가철이면 반두를 들고 나와 고기를 잡고 물놀이를 하는 행락객들이 많다"고 했다. 다리 밑에 가니 자연산 민물고기를 판매한다는 전화번호도 여기저기 적혀있었다. 하지만 강씨는 "붕어, 잉어 등 대부분 양식한 고기들"이라고 귀띔했다.

물고기 식당은 냄비 밥이 기본이므로 최소한 2명 이상은 돼야 주문을 받는다. 오래 기다리지 않으려면 예약 필수. 물 맑은 곳에서 직접 민물고기를 잡아 요리해 먹는 것도 즐거울 듯하다.

글·김영수기자 stella@imaeil.com

사진·정우용기자 sajah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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