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워터게이트'

도청과 관련된 사건은 워터게이트사건(Watergate Affair)이 가장 '역사적'이다. 1972년 6월 미국 대통령 닉슨의 재선을 돕기 위해 워싱턴의 워터게이트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비밀 공작반이 침입,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된 사건이다. 처음엔 단순한 불법 침입 사건처럼 보였던 이 사건은 닉슨을 끝내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게 만들었다. 미국 대통령 최초의 중도 퇴진이었다.

○…닉슨은 유능한 대통령이었다. 미국을 수렁에 빠뜨려 허덕이게 만든 월남전을 종식시켰다. 대통령이 되자 맹렬한 북폭으로 완강하던 월맹을 협상장에 나오게 만들고, 적당한 명분을 챙기고 월남서 발을 뺐다. 핑퐁외교와 전격적인 북경 방문으로 깜깜한 죽의 장막 속에 웅크리고 있던 중국을 세계 무대로 끌어냈다. 냉전 시대를 데땅뜨로 전환하는 물꼬를 틔운 그의 업적은 충분히 역사에 남을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민주주의는 닉슨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다. 워터게이트사건이 확대되면서 선거 방해 혐의를 비롯해서 정치 헌금 부정, 수뢰, 탈세 등 닉슨 정권의 여러 가지 불법 행위가 잇달아 터져 나왔다. 비판 여론이 고조되는 가운데 미 하원 법사위가 1974년 7월 말 탄핵안을 가결하자 닉슨은 "국가를 통치할 정치적 기반을 잃었다"며 즉각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워터게이트사건은 닉슨 사임의 빌미가 되긴 했지만 사건 자체가 닉슨을 탄핵으로 몰아간 것은 아니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대통령이, 국가 지도자가 거짓말을 한 데 대한 국민의 분노가 대통령을 몰아냈다는 것이다. 워터게이트사건이 터진 직후 닉슨은 백악관 연루설을 강력히 부인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대통령보좌관의 관련 사실과 함께 닉슨 자신이 무마 공작에 가담한 사실이 드러나면서부터 여론이 급격히 악화된 것이다.

○…안기부 도청 사건이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어디로 흘러가서 어떻게 마무리될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그 같은 도청이 자행됐던 시기가 '군부 정권'이 물러가고 이른바 '문민 정부'라며 민주화의 새벽을 열겠다고 호언했던 김영삼 대통령 시대였다는 사실은 지극히 아이러니하다. YS 본인의 개입 여부와 관계없이 조직과 지도자의 성공은 자기 성찰과 가장 가까운 부분에 대한 냉철한 판단력을 유지할 때 가능하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김재열 논설위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