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X파일 파문'…언론사간 '힘겨루기'

97년 대선자금과 관련한 안기부 녹취문건의 파문이 정계와 재계와 언론계와 검찰 등으로 번져가고 있는 가운데 언론사간의 힘겨루기 양상도 보이고 있다.

사주가 대선자금 커넥션의 당사자로 등장한 중앙일보는 25일 반성의 뜻을 담은사설을 발표하며 "수많은 도청 테이프 중 유독 특정 정치인과 기업, 그리고 중앙일보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문제를 삼고 있는 현 상황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 많고특히 도청 당사자들은 중앙일보를 매도하고 있는 일부 방송·신문사들을 거명하며 ' 그들도 떳떳하지 못하다. 자기들은 정도를 걸어온 것처럼 하는데 정말 역겹다'고 증언하고 있다"고 의혹과 불만을 제기했다.

이와 함께 1면과 3면에 "중앙일보는 물론 다른 언론사 임원들도 도청, 입 열면안 다칠 언론사 없다", "조선·동아 지금 제 정신 아니야…역겨워"라는 제목 아래안기부 도청팀인 '미림팀' 팀장의 SBS 회견을 대대적으로 소개했다.

중앙일보가 상대적으로 비슷한 논조를 보여온 조선과 동아에게 직격탄을 날린것은 자신에게 집중되는 비판의 화살을 다른 데로 분산시키려는 의도와 함께 두 신문에 대해 섭섭한 감정도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중앙일보의 한 관계자는 "지난 일에 대해서는 당연히 반성해야 하겠지만 다른신문들이 마치 자신은 정도를 걸어온 것처럼 우리에게 집중포화를 퍼붓는 것은 신문시장의 경쟁구도에서 우리를 밀어내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 같다"고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MBC가 삼성그룹과 중앙일보 고위층의 대화록을 담은 테이프와 녹취록을 입수하고도 법적 문제 때문에 보도를 주저하고 있을 때 동아일보는 20일자에 'MBC 美서 입수 비밀 녹음테이프에 정재계-언론계 촉각'이란 제목으로 녹취 사실을 흘렸고, 이튿날 조선일보는 '안기부, YS 정부 때 비밀조직 운영-政·財·言 인사들 대화 불법 도청'이란 제하의 기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안기부 출신인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도 21일 CBS에 전화로 출연해 "조선일보가라이벌 신문과의 관련도 있어서 그런 선정적인 보도를 한 것 같다"고 추측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앙일보의 이런 보도에 대한 반응은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다.

오마이뉴스는 '중앙 사설, 사과인가 협박인가'란 제목의 손석춘 칼럼을 실었고프레시안은 '중앙일보의 '물귀신'식 반성'이라고 비꼬았다.

오프라인 신문이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들도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기는 마찬가지다. 동아닷컴과 한국아이닷컴은 각각 "침묵하더니 기껏 한다는 소리는…"과 "중앙일보 반성한다더니…장난하나!"란 제목으로 중앙일보 사설에 대한 네티즌들의 비판적 반응을 소개했다.

그러나 동아와 조선은 일단 기사로는 중앙일보의 공세에 대해 정면 대응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의 한 기자는 "중앙일보의 태도에는 불만이 많지만 언론사간 감정 다툼이 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해 자제하기로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의 기자도 "언론사간 갈등을 조장하는 보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는 견해를 내비쳤다.

방송사간에도 미묘한 갈등 기류가 흐르고 있다.

법원의 가처분 결정에 따라 21일 '뉴스데스크'에서 알맹이를 빼놓고 보도해 네티즌들의 비난을 샀던 MBC는 정작 테이프를 입수하지 못한 KBS가 더 상세한 내용을보도하자 이튿날 30여분 동안 20여건의 기사를 쏟아내며 물량 공세에 나섰다.

SBS는 24일 '8시뉴스'에서 미림팀 팀장의 인터뷰를 방송하며 보도경쟁에 본격적으로 가세했다. SBS의 관계자는 조선과 동아의 항의를 의식한 듯 "어떤 의도가 있어서 미림팀 팀장 인터뷰를 내보낸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25일에는 옛 안기부직원이었던 김기삼 씨 인터뷰를 통해 "안기부가 다른 여러 언론사 임원들의 대화도도청했을 뿐 아니라 기자들의 휴대 전화도 도청했다고 들었다"고 보도했다.

MBC 보도국의 한 관계자는 "SBS와 중앙일보의 보도로 무차별 폭로전의 양상으로비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MBC는 25일 '뉴스데스크'를 통해 중앙일보가 사설을 통해 반성한 사실을 보도하면서 "본질을 흐리는 물타기식 보도라는 지적도 있다"고 비판했다.

KBS도 중앙일보의 사설을 소개하며 시민단체 등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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