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어린이기자단-녹동서원과 김충선 장군

대구시티투어에 참여한 어린이 기자단은 가창 우록에 있는 녹동서원에 갔다. 녹동서원이 있는 우록은 '사슴과 벗한다'는 뜻으로, 임진왜란 때 귀화한 김충선 장군(일본명 사야가)이 터를 잡고 살았던 곳이다.

일본 통일을 이룬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는 각별히 총애하는 젊은 장수가 하나 있었다. 그의 이름은 사야가. 그는 출중한 무예와 명석한 두뇌를 가진 그야말로 문무를 겸비한 장수였다. 도요토미는 집권 후 조선을 치기 위해 철저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도요토미는 자기의 부하 가토에게 명령해 부산을 공격했다.

몇 주일 후 부산을 정찰하던 사야가는 충격 적인 장면을 목격한다. 그것은 바로 일본군 병사들이 조선인 가족을 살해하는 장면이었다. 수많은 왜군이 조총을 쏘며 뒤쫓는데도 늙은 어머니를 업은 농부는 보따리를 든 아내와 아이의 손을 잡고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저렇게 어질고 착한 백성를 해치는 것은 성현의 가르침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그는 며칠 동안 고심한 끝에 경상좌우병사 김응서에게 편지를 보내고 귀순했다.

"내가 못난 것도 아니요, 나의 군대가 약한 것도 아니나 조선의 문물이 일본에 앞서고 학문과 도덕을 숭상하는 군자의 나라를 짓밟을 수 없어 귀화하고 싶다."

편지를 받은 김응서는 그의 귀화를 받아들였고, 며칠 후 그는 자신의 철포부대 500명을 이끌고 귀화해 조선의 장수로 울산, 경주, 영천 등지를 돌며 공을 세웠다.

강동원기자(계성초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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