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 국회에 보낸 서한과 지난 2월 25일의 취임 2주년 국정연설을 비롯하여 기회 있을 때마다 지역주의의 극복을 위한 선거구제의 개편을 역설한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에도 "야당이 진지하게 지역구도를 해소하는 제도로 대통령에게 협상해 온다면 내각제 이상의 권력 이양도 협상할 용의가 있다"며 연정과 연관하여 선거구제 개편을 제안했다.
지역주의의 극복을 위해 노 대통령과 여권 지도부가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는 방안은 중·대선거구제로 알려져 있다. 중·대선거구제는 과연 지역주의를 완화시킬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지역주의가 무엇인가를 우선 고려해 보아야 한다. 자신이 일체감을 가지고 있는 지역에 기반을 둔 정당 소속인가의 여부를 후보자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 정도를 그 유권자의 지역주의적 투표성향이라고 하자. 후보자의 자질 및 이념과 정책, 후보자 소속 정당의 이념과 정책이라는 규범적으로 바람직한 후보자 선택의 여타 기준은 유권자의 지역주의적 투표성향이 강할 경우 이에 압도되어 버리고 그 유권자는 결과적으로 자신이 일체감을 가지고 있는 지역에 기반을 둔 정당 소속 후보에게 투표하는 지역주의적 투표를 하게 된다.
이러한 개별 유권자의 지역주의적 투표가 모여 각 정당의 지역별 득표율이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거시적 수준에서의 지역주의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중·대선거구제가 지역주의를 완화한다면 지역별 각 정당의 득표율의 변화가 일정 방향으로 나타나리라고 기대할 수가 있어야 한다. 중·대선거구제가 도입되어 한 선거구에서 2인 이상의 의원을 뽑는다면 과연 영남지역에서의 열린우리당 혹은 민주당의 득표율, 호남지역에서의 한나라당의 득표율이 상승할 것인가? 중·대선거구제는 지역주의 선거전략의 동원으로 인해 유권자의 지역주의적 투표성향을 강화하여 오히려 특정 지역기반 정당의 그 지역에서의 득표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특정 정당의 지지기반 지역에서 다른 당이 지지율의 변화를 수반하지 않고서도 이전보다 많은 당선자를 배출하는 것도 노 대통령이 언급한 지역구도의 해소라고 간주할 수 있다면, 중·대선거구제는 모든 정당에 공평하지는 않지만 분명 지역구도는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해 4·15 총선에서의 득표율을 고려하면 한 선거구에서 4, 5인 이상을 뽑지 않는 한 한나라당이 호남지역에서 의석을 확보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열린우리당은 영남지역에서 상당수의 의석을 더 확보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대선거구제는 지역주의의 완화 없는 지역구도의 해소방안이라고 볼 수 있다.
공평한 인사, 각 지역의 균형적 발전 등이 유권자의 지역주의적 투표 성향을 직접적으로 완화시키는 것이라면, 이념 및 전국적 이슈와 관련된 정책에 있어서 정당간의 선명한 차이는 지역주의적 투표성향이 지역주의적 투표로 나타나는 것을 방지한다. 이렇게 볼 때, 기존의 전국구 비례대표의 의석의 수를 확대하는 것에서 지역주의를 완화하기 위한 선거구제 개편의 방안을 찾을 수 있다. 비례대표 의원의 지역대표성을 부각시켜 지역구도의 해소 효과를 분명히 하고 싶다면 권역별로 명부를 작성하는 소위 '권역별 정당명부식 전국구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수 있다. 정당이 전국적으로 얻은 정당명부에 의한 득표에 비례하여 각 정당에 의석을 할당하고, 각 정당이 이 할당받은 의석을 자율적으로 권역별로 배분하거나, 그 권역별 배분방식을 법정화 하여 권역별 득표율 혹은 인구수에 비례하여 각 정당이 할당받은 의석을 권역별로 배분하는 방안이 바로 그것이다. 이 권역별 정당명부식 전국구 비례대표제는 여권에서 중·대선거구제의 대안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알려진 '권역별 비례대표제'와는 분명히 다르다. 각 정당이 권역별로 정해진 의원의 수를 그 권역 내에서의 득표율의 비율에 따라 배정받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역시 지역구도의 해소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지역주의를 완화할지는 알 수 없다. 권역별 비례대표제에서도 중·대선거구제와 마찬가지로 지역주의 선거전략이 동원되거나 전국적 이슈보다는 지역적 이슈가 부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준표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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