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희망편지-School이냐 Academy냐

기원전 385년에 '아카데메이아'를 세운 플라톤은 "기하학에 소양이 없는 사람은 입학시키지 말라"고 했다. 그리스 철학과 세계관의 근본 가운데 하나인 수학에 대한 이해를 그만큼 중시했다는 의미다. 세월이 지나 문학, 과학 등으로 범위를 넓히면서 '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통용됐지만 모임이나 학교의 기본 이념은 원리에 대한 연구였다.

그런데 요즘 사설 학원들의 영문 표기를 보면 '△△ academy'라는 식이 흔하다. 학교를 일컫는 'school'이 교사가 학생들을 집단적으로 교육하는 기관이라는 뜻인 것과 비교하면 참 희한하다는 기분이 든다. 사설 학원들이 영문 표기를 뭐라고 쓰든 탓할 바 아니지만, 요즘의 통합교과형 논술에 얽힌 논란으로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여간 씁쓸한 게 아니다.

교육부가 논술을 정식 교과로 채택하는 방안을 연구하기로 함에 따라 일단 숙지긴 했지만 통합교과형 논술에 대한 반론들은 끊임없이 고개를 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학교는 논술을 가르칠 여건이 안 되니 학생들이 논술을 배우러 학원으로 몰리느라 공교육이 무너진다는 우려다. 교과별로 나누어진 학교와 교사 체제를 통합시킨다는 것이 현 여건으로 어렵다는 게 주장의 근거다. 교사들의 수업 시수나 업무 등을 감안하면 수업 준비와 교재 연구에 시간이 부족하고, 단기간의 연수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를 사교육의 영역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은 일종의 책임 방기다. 학원 강사 역시 교과별로 나눠져 있고, 이른바 잘 나가는 강사들은 교사들보다 몇 배나 많은 강의를 한다. 학생들을 유혹하는 감언이설이 아니고는 그들이 교사들보다 통합교과형 논술에 강점을 보일 이유가 도무지 없다.

논술 교육에 찬성한다는 몇몇 교사들은 이번이 공교육의 입지를 세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 특히 통합교과형 논술은 사교육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도록 만들 좋은 방안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동안의 대입 시험들이 개별적이고 단편적인 지식을 응용하는 문제였다면 논술은 기본 개념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수업의 진도, 교사들의 자질과 수업 방식 등 기본 개념과 원리를 확고하게 가르치는 측면에서는 공교육이 사교육을 확실히 압도한다는 것이었다.

대학 평준화 같은 비현실적 대안이나 대책 없는 비판보다 한결 희망이 보이는 주장이었다. 학교 교육에 대한 관심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내신대란까지 일으킨 마당에 쓰기 교육과 시험으로 학생들을 학교 교육의 범주 안에 머물게 하는 일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 학교 교육의 경쟁력과 신뢰도, 객관성을 높인다는데 누가 반대할까.

다가올 시대의 국가 경쟁력은 빵틀에서 빵을 찍어내듯 똑같은 시민을 배출하는 'school'이 아니라 원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진 인재를 길러내는 'academy'에서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비용과 시설은 국가의 몫이다. 땀과 노력은 학교와 교사의 몫이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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