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뇌병변 장애 요한이

오늘도 병원 복도를 아들과 함께 걷고 있다. 열 시간이고 스무 시간이고 아들이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을 병실이 아닌 복도에서 지내야 한다. 되도록 환자들이 없는 곳으로 휠체어를 몰고… 아들의 몹쓸 비명소리를 잠재워야 한다.

내 아들 유요한(9). 뇌병변1급 장애아. 자폐증에 간질, 발작을 함께 앓고 있다. 아이 엄마(43)도 그 몹쓸 정신지체를 앓고 있었는데 그것이 고스란히 유전되었다니…. 병원이 떠나갈 듯 고함을 질러대는 것이 못난 부모를 탓하는 아들의 항의처럼 들린다. 아빠를 향한 호통일까? 왜 낳았냐는 꾸지람일까? 내 복이고 내 몫이다.

아내는 잘 살고 있을까. 엄마 뱃속에서 8개월이 됐을 때 아이가 정상이 아니라는 얘기를 들었다. 뇌 속에 물이 고여 기형아가 될 거랬다. 8개월 만에 요한이를 유도분만한 아내와는 결혼 1년 만에 헤어졌다.

며칠 전 아들의 머릿 속에 종양이 생겼다. 유독 비명소리가 심해 병원을 찾았는데 새로 생긴 종양이 숨골을 눌러버릴 가능성이 있어 방사선 수술을 해야 한단다. 이 종양은 못난 아빠 때문이다. 신경섬유종증을 앓고 있는 애비로부터 갈색반점이 군데군데 생겨나는 피부병까지 유전된 요한이는 그 섬유종증으로 인해 머릿 속에 혹이 생겨버렸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 녀석, 얼마나 아프면 그랬을까. 엄마, 아빠의 나쁜 것만 모조리 건네받았다는 생각에 요한이를 제대로 쳐다볼 수 없다.

나는 도산했다. 어렵게 꾸려가던 옷수선 가게도 처분했다. 태어나자마자 뇌 속에 고인 물을 빼내고, 쪼그라진 머리를 펴는 수술로 인해 많은 돈이 들어갔다. 이제는 아들 곁에 있는 것 말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그나마 어렵게 구했던 영세민 아파트로는 들어가지 못하게 됐다. 이웃들이 아들의 고함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단다. 남구쪽에 외진 어느 주택가 방 한칸을 어렵게 얻었다.

이 생활은 충분히 견딜만했다.

특수학교에 다니는 요한이를 바래다 주고 쉬는 시간마다 기저귀를 갈아준다. 물리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면 산책을 나가야 한다. 벽이며 모서리며 보이는 대로 머리를 찍어대는 요한이를 위해 온 집안에 매트리스를 깔았다. 벽에 선풍기를 걸었고, 밀거나 당겨서 넘어뜨릴만한 물건은 모조리 묶어놨다. 그 곁에서 성경책을 읽는다. 하늘이 내 아들을 보내줬으니 하나님이 키우는 방법까지도 알려줄 것이므로.

견디기 힘든 시간은 한 번씩 찾아오는 발작이다. 정신치료로 회복기미를 보이던 요한이도 한번의 발작으로 원상태가 되었다. 20kg 밖에 되지 않는 아들의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그 거품은 모두 이 아이가 내뱉는 것인지….

아이가 내 손을 또 입술로 갖다댄다. 손 냄새를 맡으면 차분해지는 아이를 위해 난 연신 비누로 손을 씻는다. 또 나쁜 뭔가가 유전될 지, 전해질 지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발작 때문에 약물치료를 꾸준히 해야 하는 아들은 뇌간 근처에 생긴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몇 차례의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나이가 들어 지 애비가 죽으면 이 아이는 어떻게 되는 거지. 하나님이 사는 방법을 가르쳐주실까.

유용석(45·남구 대명동)씨는 지금도 요한이를 휠체어에 태우고 병원 이곳저곳을 하염없이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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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사진 : 아버지와 요한이는 비명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방해를 주지 않기 위해 오늘도 병원 구석구석을 함께 걷고 있다. 박노익기자noi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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