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권은 짧고 국정원은 길자면

안기부 '불법 도청' 폭탄의 파문을 보면서 국민이 간과해서는 안 될 중대한 문제가 또 하나 있음을 본다. 바로 정보기관 요원들의 '직업적 모럴'의 붕괴, 그리고 국가 안보가 아닌 정권 안보용으로 정보기관을 이용한 집권자들의 부도덕한 권력욕이 그것이다.

안기부 도청팀장 공운영씨는 또다시 도태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테이프를 밀반출했다. 결국 그 테이프는 재미교포 박모씨의 대(對)삼성 사업 협박용과 공씨 자신의 복직용으로 악용됐다. 또 다른 전직 김기삼씨는 미국에 망명 신청한 상태에서 미림팀의 도청실태를 계속 폭로했다.

우리는 이들의 '직무상 얻은 비밀은 무덤까지 갖고 간다'는 국정원 직원법을 위반했다는 범법 사실에만 집착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까지 청와대 주인들과 정보기관 최고위 간부들의 '안보관'-그 무게의 중심이 국가 안보였느냐 정권 안보였느냐 하는 차원의 문제에 집착한다. 전직 '기관원'들이 저지른 불법과 폭로는 바로 '정권 안보'라는 보다 큰 범죄가 수십년 동안 만들어 낸 '부작용'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국민은 YS가 집권했을 때 안기부를 없앨 줄 알았다. DJ가 집권할 때도 안기부는 이제 죽는 줄 알았다. 그러나 안기부는 살았다. "집권 전에는 그렇게도 미웠던 안기부가 권력을 잡고난 다음엔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는 당시 세간의 표현이 새삼스런 지금이다.

국정원에 대한 불신의 씨앗이 노(盧) 정권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다시 움트는 이유-그것은 공운영씨가 불안해 했던 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직 내부가 흔들리고 '정권 줄서기'가 습관성이 돼왔기 때문이라면 헛다리 짚은 것인가. 정보 요원들의 도덕성과 사명 의식의 붕괴는 바로 윗물이 탁한데서 빚어졌음을 석고대죄하라는 것이다. 정권은 짧고 국정원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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