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오토모 가츠히로 감독 새영화 '스팀보이'

일본 최고의 애니메이션으로 '아키라'를 첫 손에 꼽는 사람들이 많다. 그 이유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인간의 파괴본능을 그만큼 철학적이고 깊이있게 다룬 애니메이션이 없기 때문이다.

'아키라'의 원작과 각본, 감독을 맡았던 오토모 가츠히로 감독의 최근작 '스팀보이'가 다음달 4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완성된 이 작품은 베니스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때는 증기 기관 발명과 함께 산업혁명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19세기 중반 영국의 맨체스터. 괴짜 취급받는 부자(父子) 발명가 로이드 스팀과 에드워드 스팀은 미국에서 증기기관 발명에 몰두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에드워드의 아들 레이는 할아버지 로이드로부터 '스팀볼'을 받는다.

그러나 '스팀볼'을 노리고 있는 이들로부터 습격을 받고 레이는 납치당한다. 그 곳에서 예전과 달라보이는 아버지 에드워드를 만나고 그에게서 모든 발명의 결과물이라고 일컬어지는 '스팀성'에 관한 설명을 듣는다.

아버지는 스팀성 완성에 여념이 없지만 그곳에 억류돼있는 할아버지는 어쩐 일인지 스팀성 완성을 당장 그만두라고 소리친다. 레이는 아버지가 개발하고 있는 스팀성이 무서운 능력을 가진 무기라는 사실과 곧 열리는 런던박람회에서 각국에 무기를 팔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작품에서 가장 돋보이는 점은 영상미다. 19세기 영국의 모습은 이들의 손끝에서 세밀하고도 아름답게 재현된다. 온도까지 느껴지는 스팀의 질감과 유기적으로 박자를 맞춰가는 증기기관의 움직임, 꽁꽁 언 얼음이 눈으로 부서지는 느낌의 표현력은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카메라의 움직임도 좋다.

'천공의 성 라퓨타'와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재패니메이션의 성(成) 계보를 잇는 '스팀성'은 그 어떤 성보다 거대한 위용을 자랑한다. 겉으로 보면 커다란 전시관 건물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이 성은 전체가 스팀관으로 연결된 기계이다.

초고압력 고밀도인 스팀볼 3개가 탑재돼야 그 힘을 발휘하는 스팀성은 증기기관동력의 위력을 그대로 보여준다. 스팀성은 그 실체를 드러낸 뒤 런던 시내를 휘젓고 다닌다. 스팀성이 이 작품의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아키라'에서 오토모 감독이 관객들에게 선사했던 충격과 감동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을까.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크다. '아키라'에서 작품 내내 생각과 고민의 끈을 놓치 않았던 감독의 치열한 주제의식이 이번 작품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작품을 눈보다 머리에 더 깊에 각인시켰던 그의 능력이 아쉽다.

감독은 과학을 로이드와 에드워드 둘로 나눠 대립시킨다. 우주의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과학의 역할이라는 입장과 과학이 가진 힘으로 진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 맞선다. 물론 레이는 인간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전자의 손을 들어준다.

여기에 전쟁과 무기, 제국주의 등의 소재를 더하지만 이 작품 전체를 꿰뚫는 주제는 여전히 빈약하다. 등장인물의 성격 역시 단선적이다. 조금 더 복잡한 인물의 심리와 욕심을 표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 작품이 갖고 있는 깊이와 내공이 볼거리에 치중해 속빈 강정이었던 올 여름의 수많은 애니메이션보다는 낫다는 점이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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