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최승호 '전집'

놀라워라. 조개는 오직 조개껍질만을 남겼다

최승호(1954~ ) '전집'

시는 단 몇 마디로 말로 방대한 산문적 내용을 압축해 버립니다. 돼지를 말할 때 산문은 머리와 몸통, 네 발과 꼬리를 다 묘사하는데, 시는 동그랗게 말린 꼬리만 슬쩍 흔들면서 돼지의 몸통은 물론 사는 모습까지 보여주기 때문이지요.

이 시가 바로 그렇습니다. 조개는 조용하게 한 생을 마감하면서 조개껍데기 하나만 남깁니다. 한마디로 조개에게 조개껍데기는 그의 전 생애를 이끌고 온 기록물, 전집이라는 것입니다.

간결한 한 마디로 전 생애를 이렇게 압축해 보여주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이 짧은 시를 읽으니, 탐욕에 젖은 인간들은 한 세상 살면서 재물과 권력과 명예를 위해서 눈치보고 아부하고 타협하며 동분서주하지만, 과연 죽은 후에 무엇을 남기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진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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