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정치의 풍자, 풍자의 정치

풍자는 인간생활과 정치현실의 악폐나 허위에 대해서 조롱하고 빈정대는 표현 방법을 가리킨다. 현실을 향해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되 직접적으로 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조롱하는 유머의 한 형식으로 이용돼왔다. 풍자는 오래전부터 서사문학이나 시문학에서 주요한 표현법이었고 현대에 와서도 연극, 미술, 영화에서 어렵잖게 만날 수 있다.

대놓고 비판하기 버거운 상대를 은근히 놀려대는 풍자는 당연히 지배층보다 피지배층에게 어울리는 문화적 양식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민권의식이 움트기 시작한 조선 중·후기가 되면 양민들의 놀이에는 풍자가 빠지지 않았다. 춘향가, 흥부가 같은 판소리나 하회가면극 같은 연희(演戱)를 보아도 풍자가 얼마나 풍성하게 이루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선비들의 시문에도 세련된 풍자가 없지는 않았으나 양민들의 그것과는 비할 바가 아니다. 도리어 권력층은 풍자의 대상이었다. 탈춤을 추면서 양반이나 권력층을 제법 조롱하고 공격하며 또 그것으로 웃음을 터트린다. 풍자는 억압적인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되, 속 시원한 카타르시스(배설)이었던 것이다.

오늘날에 와서도 풍자는 넘쳐난다. 시대에 걸맞게 인터넷에서 가장 활발히 일어난다. 불만이 있으면 풍자가 생기는 법일진대 그중 정치적인 것은 가장 비옥한 풍자의 토양이다. 더러는 지나치게 노골적이라 눈살을 찌푸리게도 하지만 기발한 패러디 물들은 온라인을 떠돌며 네티즌들에게 풍자의 공격성과 카타르시스의 즐거움을 한껏 맛보게 한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상한 점은 일반 국민만 아니라 권력층도 풍자를 선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때는 권력의 피라미드가 좁혀질수록 풍자를 즐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 예를 들자면 끝이 없을 것 같다. 17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야당의원들이 모여 정책연구 발표가 아니라 한바탕 풍자극부터 선보였다. 경제정책 실정을 빌미삼아 대통령을 조롱하는 것이었다. 풍자에 대해서는 보다 일가견이 있는 쪽은 정부여당인 것 같다. 정부여당은 집권 후부터 꾸준하게 풍자적인 발언들을 띄워 보냈다. 풍자로써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지경이었다.

흔히 알고 있는 것만 가지고 예를 들어보자. 이달 초 재해 위기상황에서 총리가 제주도 가서 골프를 친 것이 문제가 되었을 때, 총리는 라운딩조차 주요정책을 협의하는 장소로 삼는다고 측근이 말했다고 한다. 근자에는 대통령이 정치를 정상화시켜야 한다며 연정(聯政)을 내걸었다. 들리는 말로는 제1야당 대표가 국무총리가 되는 '대연정'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제1당과 제2당이 합쳐 국회 의석수의 90%프로가 넘은 대연정이 이뤄진다면 국민들에게는 끔찍하다 못해 재앙 수준이다. 누가 정부를 견제하고 비판할 것인가. 그런 연정이 정상적이라고 했으니, 풍자가 아니라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노릇이다. 아니, 풍자임이 분명하다. 겨우 골프를 친 일을 가지고 호들갑스럽게 보도하는 '게으른' 언론에 대해서 풍자를 했음이 분명하고, 연정의 제안도 대안 없이 시비만 걸어서 지지율을 상승시키는 야당에게 '총리한번 해보시지'하고 비아냥거린 게 틀림없다. 그래서 풍자이다. 풍자를 사용해서 정치를 하는 셈이다.

정치권의 풍자는 끝도 없다. 야당 쪽의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 한 사람은 현직 대통령을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이라 조롱하니, 여당 쪽에서는 당신도 '경포대'(경기도민이 포기한 대선후보)라고 대응한다. 나도밤나무, 너도밤나무란 말처럼, '나도 경포대, 너도 경포대'이다.

풍자는 권력이 즐길 만한 표현 기법이 아니다. 대체로 풍자는 정치 사회적인 억압에 눌린 백성들이 마지못해 사용하는 배설의 양식이다. 권력층은 백성들이 하는 풍자를 지켜보고 그 속에서 비판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한다. 권력층이 조롱과 배설의 양식인 풍자에 취하면 정작 백성의 풍자가 귀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권력층은 풍자의 대상이지 풍자의 생산자가 아닌 것이다.

엄창석 소설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