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도요타 2005년 여름 (하)

지난 번에 도요타자동차가 기록하고 있는 엄청난 이익 행진과 완벽하리만치 철저한 작업시스템에 대해 얘기했다. 사실 도요타 직원들의 작업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생산직의 하루 근무시간은 2만7천600초이고 하루 휴식시간은 1천200초라니 더 무슨 얘기가 필요하랴.

관리자도 마찬가지다. 관리자의 주 임무는 생존원가 사수. 생존원가란 아무리 판매가가 떨어져도 이익을 낼 수 있게끔 역산한 원가를 말한다. 이를 맞춰내지 못하면 직급이 내려가고 심지어 현장 생산직으로 떨어진다. 이렇게 수직 강등되는 비율이 한 해 20%나 된다고 한다.

"1년에 단 1대의 자동차를 팔더라도 이익을 남기는 회사"가 되는 게 도요타의 목표이니 얼마나 군더더기 없는 이익구조를 추구하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지독히 이익만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도요타는 어떻게 '국민기업'으로 일본인의 사랑을 받는 것일까? 또 직원들은 왜 이처럼 살인적인 작업강도와 근무조건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려면 오늘의 도요타를 있게 한 TPS(Toyota Production System)의 탄생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도요타는 대동아전쟁으로 잘 나가다가 일본이 패망하는 바람에 같이 망해서 은행관리를 받았다. 사장이 퇴진하고 직원 30%가 해고됐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회생, 1952년 막대한 은행 빚을 갚고 흑자로 돌아섰다. 그러자 직원들이 쫓겨난 전 사장을 다시 불렀다. 사장이 직원들에게 은혜를 입은 셈.

사장은 우선 해고됐던 이들을 복직시켰고 복직할 형편이 되지 않는 이에겐 그 간의 월급을 치렀다. 자연스레 회사 측과 직원들 사이에 감사와 보답이란 정서가 형성됐다. '앞으로는 절대 망하지 않는 회사'를 만들어보자는 노사 각오 아래 TPS가 시작된 것이다.

그 이후 도요타는 지금껏 만 60세 종신고용제를 고수하고 있다. 임금은 당연히 업계 최고. (물론 함정은 있다. 비정규직 비율이 30% 이상. 도요타는 여기에 모든 인건비의 유동비화를 소원할 만큼 탄력적인 구조를 추진 중이다.)

특히 도요타는 매년 회삿돈으로 주식을 일정량 사들여 직원 몫으로 배정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따로 쌓인 주식이 발행량의 26% 정도. 유난히 노후 걱정이 많은 게 일본사람들이니, 퇴직하면서 받는 도요타 주식은 자식만큼 든든한 노후보장책이다.

직원들한테 잘 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매년 일정액을 지역사회에 기부하는데, 지금 한창인 아이치 박람회에도 거액을 내놓아 "차라리 도요타 박람회"라는 말을 듣는 것은 작은 사례의 하나다.

무엇보다 도요타 시를 비롯해 나고야 전체가 도요타가 풀어놓는 돈 덕택에 호황을 누렸다. '도요타가 일본을 구한다'는 제목의 특집기사가 시사경제지에 실리고, 도요타의 강점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NHK를 통해 나가면서 요즘엔 일본 전체를 떠받친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이익 많이 내고 직원들 최고 대우해주는' 회사에 머물지 않고, '지역사회와 국가에 기여하는' 기업이 도요타의 진면목이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도요타 배우기가 한창이다. 그런데 우리가 '효율'이나 '개선'이라는 것에만 주목한다면 그건 수박 겉핥기가 될 것이다. TPS도 마찬가지다. 후공정 인수, 간판방식, 표준화·다기능화·자동화, 낭비 제거 등 TPS를 말할 때면 반드시 거명되는 이런 방법들이 TPS의 전부는 아니다.

도요타에선 흔히 "1학년 6년 다닌다고 6학년 되나?"라고 묻는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에는 발전이 없다는 것이다. 도요타 직원들은 한 공정을 열심히 해서 최고수준이 되면 스스로 테스트를 자청한다. 통과하면 다음 공정으로 일을 바꾼다. 공정을 따라 숙련하는 것을 평생의 일로 여긴다. 이것이야말로 자아실현이며 회사는 직원들이 도전하고 성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진정한 인간 존중이라고 얘기한다.

'개선'에 '미친' 이들이 50년 이상 긴 세월 동안 무섭도록 추구해온 것이 TPS이다. 하지만 여러 도구들이 정교하게 짜여져 있을 뿐만 아니라 노사 상생, 인간 존중이란 철학까지 녹아들어 이제는 거대한 '주의'로 승화한 게 또한 TPS이다.

우리가 이제사 TPS를 배운다면, 무엇을 배워서 어떻게 실천해야 도요타를 이길 수 있을까까지 생각해야 제대로 배우는 자세일 것 같다.

이상훈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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