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대통령 '대연정 제의' 배경과 전망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28일 '당원동지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통해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대연정(大聯政)을 하자고 정식 제의했다.

현직 국가원수가 정치적 숙원 해소를 위해 통치권력을 내놓겠다는, 헌정사에서유례를 찾기 힘든 제안이다.

이는 지난달 24일 노 대통령이 여권 수뇌부 회의에서 "연정이라도 해야하는 것아니냐"며 연정의 필요성을 언급한 이후 한달만에 대통령이 직접 자신의 연정론을분명하게 정리해 전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 5일 "연정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뤄지는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말로 연정추진 공론화를 촉구하고, 다음날 "지역주의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필요하다"며 현행소선구제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에서 더 나아가 연정구상을 보다 선명하게 구체화한것이다.

노 대통령이 이날 서신을 통해 한나라당 등 정치권에 던진 메시지는 간단명료하다.

'여소야대'라는 비정상적 정치구도를 정상화하기 위해 한나라당 등 야당과의 ' 대연정'이 실현돼야 하며, 이를 위해 선출된 대통령 권력을 내각제 수준으로 야당에이양하되, 대신 망국적인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 지역주의의 '사슬'인 선거구제를 바꿔야한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대연정이라면 당연히 한나라당이 주도하고 열린우리당이 참여하는것을 말하는 것"이라며 "이 연정은 대통령 권력하의 내각이 아니라 내각제 수준의권력을 가지는 연정이라야 성립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7일 중앙언론사 편집.보도국장단 간담회에서 지역구도 타파를 전제로 "내각제 수준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이양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것에서 연정 대상을 추가한 구체적 제안으로 받아들여진다.

만약 한나라당이 이 제안을 수용한다면 노 대통령은 실질적 권한이 없는, 내각제하의 상징적인 대통령으로 권한이 축소된다.

물론 권력이양의 전제로 지역구도 해소를 위한 선거제도 개편을 제시했고, 선거제도 개편과 '대연정' 구성을 위한 일정도 함께 내놓았다.

노 대통령은 "굳이 중대선거구제가 아니라도 좋다. 어떤 선거제도이든 지역구도를 해소할 수만 있다면 합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하며 정치적 합의만 이뤄지면 곧바로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대연정이 구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선거구제 개편이 완료되지 않았을지라도, 이를 위한 정치적 합의만 이뤄지면 한나라당이 내놓은 국무총리를 정점으로 한 내각을 구성할 수 있고, 그 이후 선거법개정 실무작업에 들어가면 된다는 설명인 셈이다.

자기희생을 전제로 하는 노 대통령의 이런 제안은 동시에 자신의 연정구상이 4.

30 재보선 이후 여소야대(與小野大) 구도 회귀에 따른 정국 주도권 확보 시도 또는내각제 등 분권형 개헌을 위한 분위기 조성용이라는 정치적 해석을 일축하는 의미도띠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노 대통령은 연정구상에 담긴 진정성을 설명하는 데 서신의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특히 한나라당에 "얼른 국정을 인수하여 위기를 극복해야 할 것"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해 대연정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은 자신의 연정론이 정치권의 불신의 벽에가로막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에 나선 명분도 지역주의 극복이었고, 이는 정치생애를 건 목표이자 대통령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며 "정권을 내놓고라도 반드시 성취해야할 가치가 있는 일이며 역사에 대한 저의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국이 안기부 도청문건인 이른바 X파일 파문에 휩싸여 시계제로인 시점에서 굳이 서신을 낸 점도 노 대통령의 진정성을 가늠케 하는 대목으로 읽힌다.

청와대 관계자는 "도청사건이 어느정도 가닥을 잡은 뒤에 서신을 내는 게 낫겠다는 의견이 많았으나 대통령께선 '진정성을 알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과 대연정에 중점을 둔 것은 특히 대연정이 국회와 국정운영에서 갖는 추진력을 우선적으로 감안한 결과라는 해석도 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연정을 이루면 양당의 의석이 개헌선인 전체의 3분의2를 넘고, 이는 선거구제 개편의 용이성을 담보하는 것은 물론 향후 개헌논의에 탄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앞으로 연정논의의 초점은 한나라당이 과연 노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이냐에모아질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일단 노 대통령의 대연정 구상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으나, 청와대 등 여권에서는 "앞으로를 지켜보라"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어 여권 수뇌부가중심이 돼 본격적인 물밑 조율에 나설지가 주목된다.

노 대통령 또한 "실제 양당의 구성을 보면 노선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며 " 한나라당도 당장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지만 우리가 진지하게 설득하고 점차 국민들의 이해가 넓어지면 결국 진지하게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연정 합의의 기대감을 표시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문제는 한나라당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영남, 특히 대구.

경북 지역의 중진들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있다고 본다"며 "한나라당 역시 현재의 지역구도로는 집권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안정적 국정운영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노 대통령의 제안을 마냥 무시하는 태도를 견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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