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상 밖' 사람들] 영양군 수비면 오무마을

길은 인적이 없어 적막감마저 감돈다. 영양군 수비면을 출발해, 북동 쪽으로 뻗어 울진 왕피천에 합류하는 장수포천을 따라 올라가기를 한참. 반딧불이 생태체험마을과 수하청소년수련원이 나타났다. 하지만 목적지인 오무마을로 가는 이정표는 아직 보이지않는다.

청소년수련원에 들어가 길을 묻기로 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김강규(48) 담당이 마침 있어 반갑게 맞아준다. 대충 설명은 들었지만 영 찾아갈 자신이 없다. 어쩌랴! 김씨를 반강제로 승용차에 태웠다.

"대체 그 골짜기에는 왜 갑니까." "글쎄, 그냥 골짜기니까 가보자는 거지."

다시 한참을 가다보니 산딸기가 온 숲을 벌겋게 물들인 마을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 곳은 오무가 아니다. 송방(소나무가 많아 생긴 이름) 마을이란다.

"오무는 여기에서도 3km는 더 가야 됩니다. 계곡을 궁(弓)자로 몇 번은 건너야 해요.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야 합니다."

차를 세워두고 울창한 숲 사이로 난 산길을 따라 걸으면서 김씨에게 미안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장수포천이 교통의 오지로 만들고 독산이 세상과 단절시켜 놓은 곳. 오무에서 처음 만난 집은 박용득(70)씨네였다. 박씨는 송방마을에 잎담배 수확하러 나가 없었고 아들 성철(38)씨가 마당에서 여물을 작두로 자르고 있었다.

마을에서 가장 젊은 성철씨는 안동에서 고교를 졸업한 뒤 사회생활을 하다 8년 전 고향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부친과 함께 잎담배·고추·벼농사 1만 평을 짓고 있다.

성철씨와 농사 이야기를 나누던 중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분명 아기 울음소리였다. 이 첩첩산중에!

"5년 전 결혼했는데 이제 첫 아들을 얻었어요. 생후 7개월됐지요."

수하리가 고향인 부인 이옥이(38)씨가 낳은 세원이는 이 마을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13년만의 '탄생'이었기 때문. 마을 여기 저기 거의 허물어진 채 버려져있는 빈집들이 새삼 우리 농촌의 현실을 깨닫게 한다.

잠시 후 성철씨가 이종사촌인 배영석(48) 반장 집으로 안내했다. 배씨는 아직 총각이어서 19살 때 울진군 왕피리에서 시집와 55년째 살고 있는 어머니 임춘하(74)씨와 단 둘이서 지내고 있다.

"반장이면 뭐 하니껴, 손주는 커녕 장가도 못 들었는데. 좋은 며느리감 혹시 아는데 없니껴."

임씨의 아들 걱정이 태산이다.

현재 오무에는 여섯 집이 산다. 그 중 다섯 집이 배씨 가족이고 한 집만 박씨 가족이다. 유일한 타성씨인 박용득씨도 사실은 외갓집이 이 곳에 있어 어릴 때 들어오게 되었단다. 그러니 이 곳에서는 위, 아래, 옆집이 모두 친척이다.

사실 오랜 옛날부터 오무는 환난을 피할 피난지로 일컬어져 왔다. 마을의 배씨들도 약 300년 전 난리를 피해 들어온 조상의 30대 후손들이라고 한다.

어느새 마을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좋은 곳에 산다며 인사를 건네자 불만이 터져나온다. "좋은게 뭐니껴. 나이 많은 사람만 사는데. 워낙 구석진 '고랑탱이'라 차도 안다니고. 젊은애들은 마캉 객지에 나가 농사 지을 할 사람도 없구마. 우예 살겠노."

오무에는 수십년 전만 해도 30여호에 160명 정도 살았다고 한다. 당시 집은 모두 굴피(나무껍질)집이었는데 새마을운동으로 함석·슬레이트지붕으로 바뀌었다.

배재욱(67)·김분선(62)씨 부부가 "옛날 굴피집은 비가 새고 겨울이면 추워서 엄청 고생했다"고 하자 "임춘하 할머니가 "박정희 할바이(대통령) 살았을 때 지붕을 개량해줘 얼마나 좋았는지 지금도 박정희 할바이가 너무 고맙다"고 거든다.

남편 배재선(71)씨와 함께 온 김숙녀(72) 할머니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처음 시집왔을 때는 말도 못할 정도였다"며 "명절에 혼자 디딜방아를 찧어 제사상 차리는 동안 신랑은 마을만 다녔다"고 눈을 샐쭉 흘긴다.

맛깔스런 김치와 풋고추를 곁들인 푸짐한 저녁을 먹는 동안에도 주민들의 하소연은 계속 이어졌다. 청정환경이 좋다며 찾아오는 관광객들에 대한 성토였다.

"물가에 와서 노는 것까지야 괜찮아요. 길이고 강가고 쓰레기 마구 버리고 가면 그건 누가 치우니껴. 우리는 일손이 모자라 하루종일 죽도록 일하는데....."

다음날 아침. 작별인사를 해야하는데 주민들은 아직 전해줄 이야기가 더 많은 눈치다. "도로가 닦이면 다니기가 더 좋을텐데...."

속시원하게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할 수도 없고 위로의 말을 또 건네기도 힘든 상황. 선물이라며 약간의 용돈을 넣은 봉투를 배영석 반장에게 부끄럽게 전하고 은근슬쩍 일어섰다. 주민들의 배웅을 뒤로 하고 내려오는 동안 마음 속으로 기도를 드렸다. '세원이 동생, 세원이 사촌도 어서 태어나고 오무에 좋은 일만 생겼으면....." 영양·김경돈기자 kdon@imaeil.com

사진 : (위)오무마을 주민들. 왼쪽부터 배재욱(67)·김분선(62)씨 부부, 임춘하(74)씨, 박옥녀(70)씨, 뒷줄 배영석(48)씨, 박성철(38)씨. (아래)박성철(38)·이옥이(38)씨 부부가 결혼 5년만에 얻은 세원이(7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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