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 문화재 풍수답사기

우리 문화재 풍수답사기/ 장영훈 글·사진/ 담디 펴냄

연초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光化門)은 때아닌 현판 논쟁에 휘말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8년 복원 당시 썼던 광화문 한글 현판을 정조의 글자를 집자한 한자현판으로 교체하겠다는 문화재청의 계획이 발단이었다. '박정희 죽이기'라며 정치적 저의를 의심하는 비난의 목소리가 거셌고, 한글학회 등 한글 관련 단체들은 한글 현판을 한자로 바꾸는 데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거센 논란 끝에 결국 교체 계획은 광화문 원형복원 이후로 미뤄졌다.

풍수학적 시각에서 본다면, 광화문의 현판은 교체되는 것이 맞다. 경복궁 최전방을 지키는 광화문에는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맞불을 놓아 진압하겠다는 의도가 숨어있기 때문. 광화문의 광(光)자는 뻗어가는 불꽃 형상의 글자로 강력한 맞불 글자다. 광화문에서 맞불 글자인 광(光)자가 빠졌을 경우, 발등에 불이 떨어지는 곳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청와대. 풍수학적으로 청와대 터는 이래저래 탈이 많을 장소다. 청와대의 뒷산(主山)인 북악(北岳)은 바위산이다. 문제는 북악의 살벌한 바위의 기가 미처 정화되지 못한 자리에 청와대가 위치하고 있다는 것. 따라서 인간이 거주하기엔, 더구나 한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가 거주하기엔 부적합한 곳이라고들 한다. 적어도 풍수계엔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이론이다.

조선왕조는 유교 국가인 동시에 풍수를 신봉한 사회였다. 600여년 전 한양이라는 터와 궁궐이라는 집은 모두 풍수로써 택지되고 배치됐다. 조선의 왕들은 한양 풍수가 궁궐에 영향을 미치고 선대 왕릉의 발복이 용상에서의 발복과 직결된다고 믿었다. 또한 사대부들은 서원에 풍수를 접목시킴으로써 유교예제와 인걸을 담으려 했다.

'우리 문화재 풍수 답사기'는 우리 문화재에 스며들어 있는 풍수문화를 찾아 쓴 답사기다. 조선시대 궁궐을 다룬 '궁궐을 제대로 보려면 왕이 되어라', 왕릉을 분석한 '왕릉이야말로 조선의 산 역사다', 서원을 주제로 한 '조선시대의 명문사학 서원을 가다' 등 모두 3권으로 구성돼 있다.

저자는 장영훈씨는 환속 승려이자 국내 최초의 풍수교수. 현재 지리산에 기거하며 부산대에서 풍수를 강의하고 있다. 그는 조선시대 문화유적을 제대로 이해하고 보기 위해서는 유교적 시각과 풍수적 시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직접 발품을 팔며 현장을 답사한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동안 이해되지 않은 많은 것들, 미처 알지 못했던 갖가지 사실들이 흥미를 자아낸다.

1권에서는 경복궁과 창덕궁, 창경궁을 걸으며 궁궐 터 잡기부터 건물의 형태와 이름 등에 녹아든 풍수를 짚어준다. 책 안에는 알고 나면 한번 더 곱씹게 될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하다. 가령 세로로 현판이 부착된 숭례문, 돈의문, 광화문 등과 달리 보물 1호인 '흥인지문'(興仁之門)'은 왜 사각형의 현판에 넉자로 된 까닭은 무엇일까. 인왕산과 낙산을 올라가 본 이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해답을 확인할 수 있다. 풍수지리학상 '우백호'에 해당하는 인왕산은 기골이 장대한 반면 '좌청룡'인 낙산은 왜소하고 형세가 짧다. 이에 용트림을 치는 모양의 '之'를 넣어 주어 낙산의 약점을 보완하려는 주술적인 의미였다.

2권은 동구릉(東九陵) 답사를 통해서 조선왕릉 전체와 역사까지 풀어 놓는다. 동구릉 현장에서 체험한 풍수와 역사를 확장시키면 조선역대왕릉과 조선의 역사와도 통한다는 것. 따라서 왕릉 답사의 안내서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저자는 왕릉 택지에 관한 풍수 논쟁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한다. 풍수명당 왕릉에 관심이 쏠리면서 조선 왕조 특유의 권력시스템이 끼어들었다는 것. 때문에 정권 교체시마다 왕릉의 위치 하나 하나가 권력 투쟁의 절대 명제가 됐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동구릉과 태조왕릉, 문종왕릉, 선조왕릉, 영조왕릉 등 9개 왕릉의 풍수적 해석을 중심으로 조선왕조의 왕통계보와 왕릉 조성을 둘러싼 권력 암투, 왕릉간 비교를 통한 시대상을 전한다.

3권 '조선시대의 명문사학 서원을 가다'에서는 사대부 풍수라는 전통적인 시각으로 서원 문화재를 풀어놓는다. 조선의 사립교육기관인 서원은 풍수로써 터를 잡고 풍수법칙에 따라 방의 자리를 잡았다. 당시 이를 적용했던 서원 풍수의 실력자들은 한낱 무덤 풍수장이가 아닌 당대 최고 지식층인 사대부들이었다. 저자는 소수·도산·병산·덕천서원의 건물배치는 물론 작은 석물 하나하나에 담긴 풍수를 읽어낸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다양한 사진 자료다. 저자가 직접 촬영한 풍성한 자료 사진들이 이해를 돕고 있다.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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