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다. 올 여름 해수욕을 마음먹고 있다면 포항으로 가보자. 실컷 물놀이를 해도 2%가 모자라면 신기한 동굴 구경을 해보자. 희귀한 종유석과 석순이 가득한 자연동굴을 생각했다면 오산. 나지막한 야산에 붙어있는 인공 동굴이다. 그런데 이곳을 찾는 이들의 느낌은 제각각이다. 친구끼리 차 한 잔 마시며 더위도 씻어내고 미술작품도 둘러볼 겸 오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나들이 삼아 역사의 흔적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오는 가족들도 있다.
'갤러리 동굴'(포항시 남구 오천읍 세계리). 포항의 명물이지만 외지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우리나라 유일의 동굴 갤러리이다. 포항시내에서 차로 15분 거리. 감포에서 40분 정도 걸리고 구룡포와도 멀지 않은 곳. 오천읍에서 장기면 방향으로 약 5분 정도 달리면 길 오른편에 '동굴산장'이라는 예쁜 간판이 보인다. 좁은 길을 따라 400여m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야트막한 산 아래 '갤러리 동굴'이 자리하고 있다.
"사실 갤러리 장소로는 맞지 않아요. 갤러리는 시야가 3m 정도는 돼야 하는데 동굴 폭이 2.5m여서 소품만 전시할 수 있지요."
'갤러리 동굴'을 운영하고 있는 이상곤(58)씨. 편한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마음씨 좋은 아저씨 같은 모습인 그의 설명을 들으니 동굴에 대한 느낌이 새로웠다. 바깥 기온이 아무리 덥든지, 춥든지 간에 20℃ 이상 온도가 오르지 않는 동굴. 더위가 싹 가실 정도로 서늘한 동굴 안으로 들어서니 벽면에 걸린 온습도계가 온도 19℃, 습도 66%를 가리키고 있었다.
"여름에는 습기에 상관없는 조각전을 열고 가을부터 늦봄까지 쾌적한 날씨에는 그림전을 열고 있어요."
마침, 영화인 김지미·성철 스님 등 유명인들의 흉상·전신상으로 이름난 조각가 장용호씨의 작품전이 열리고 있었다.
높이 3m, 길이 35m로 전체 면적이 37평 정도 되는 인공 동굴. 사람인(人)자 모양으로 북쪽과 동쪽에 출입문이 나있는 이 동굴은 1940년경 일제가 태평양전쟁에 대비해 전쟁물자를 비축하기 위해 조선인을 징용해 야산을 파 만든 것이라고 한다. 아무런 관심도 끌지 못한 채 방치돼 있던 것을 이씨가 지난 2001년 갤러리로 개관한 것. 진짜 동굴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단장돼 있는 동굴 안을 이러 저리 살피니 막혀있는 동굴 안쪽으로 원래의 흔적들이 보였다.
별다른 기록이 남아있지 않지만, 도망가지 못하도록 전라도쪽 사람들을 징용해 굴을 파다가 죽은 이들이 많았다며 일본인 감독은 형산강을 건너다가 맞아 죽었다는 얘기가 있다고 했다.
"그냥 버려 두기에는 아까운 역사의 애환이 남아있는 동굴이 아닙니까. 입장료도 없고 대관료도 없고 편하게 차 한 잔 마시고 쉬면서 볼거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30년 가까이 다니던 직장에서 나와 작지만 주민과 같이 호흡할 수 있는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미친 짓 한다는 소리까지 들으며 1년 동안 죽을 고생으로 동굴갤러리를 꾸몄다고 한다. 굴 전체를 복구하고 싶었지만 흙이 무너져 내려 중도에 포기했다고. 콘크리트로 굳힌 바닥 밑에는 아마도 물자를 옮기는데 편리하도록 깐 레일이 있을 거라며 지금도 원래 굴에 대한 궁금증이 남아있다고 했다. 관람객들이 버리고 간 못 쓰는 우산·돌덩이·나무 등으로 자신만의 조각작품들을 만들어 한쪽 공간에 전시해 놓은 그는 1주일에 2, 3개씩 재활용 작품을 만드는 즐거움이 크다고 했다.
'갤러리동굴' 옆에는 '동굴산장'(054-291-6444)이라는 자그마한 식당이 있다. 이씨의 아내 김유정(54)씨가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고 몸에 좋은 생약을 재료로 한 약선 요리와 유황오리 음식들을 내놓고 있다. 생약초를 넣은 약초돌솥밥, 거제도에서 가져온 대나무에 지은 왕대나무밥 정식이 1인분에 8천원이다. 이씨는 식당에서 번 약간의 수익을 갤러리를 통해 지역민에게 환원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화학조미료에 입맛이 길들여져 있는 사람에겐 약선요리가 별 맛이 없을 수 있습니다. 오리고기나 약밥을 안 좋아하는 사람은 어쩌겠어요. 음식을 싸들고 와서 먹고 놀다 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 식당에서는 안동간고등어도 약초물에 담가 비린내와 소금기를 약간 없애고 몸에 좋은 약초를 이용한 동굴약주도 내놓고 있다. 김영수기자 stella@imaeil.com
사진 : 일제의 잔재인 버려진 동굴을 갤러리로 꾸며 기성작가들의 작품과 자신만의 재활용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이상곤씨. 역사의 현장에서 사람들이 마음 편하게 쉬다 가며 볼거리도 있으면 좋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이채근기자 minch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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