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샤갈 드로잉 몇 점을, 점심 땐 아펠의 작품 두어 점을, 오후엔 피카소의 그림 몇 점을 그렸다'는 전설적(?)인 말이 전한다. 네덜란드의 미술품 위조꾼 얀센을 두고 이른 말이지만, 그의 위조 실력을 가히 알 만하다. 심지어 화가들마저 그가 그린 가짜를 자신의 진짜 그림으로 볼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도 결국은 덜미가 잡히고 말았다. 샤갈의 가짜 그림을 감쪽같이 그렸으나 작가 사인의 철자를 조금 틀리게 썼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미술품을 둘러싼 '가짜 시비'가 빈발해 왔다. '내로라'하는 유명 작가치고 위작(僞作) 시비에 휘말리지 않은 경우가 드물다. 고미술품은 50% 정도가 가짜라는 통계도 나온 바 있으며, 예술성은 물론 희귀성 때문에 그림 값이 천정부지로 오른 작가들의 작품을 겨냥한 사기꾼들의 눈독과 돈독은 그야말로 극성이다. 위작 시비가 끊이지 않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최근 진위(眞僞) 논란이 뜨거웠던 화가 이중섭(李仲燮)'박수근(朴壽根)의 작품들이 위작인 것으로 판단됐다. 검찰로부터 감정을 의뢰받은 미술평론가'화가'화상'미술품 감정전문가 등 미술전문가 14명 전원이 가짜라고 의견을 밝혔기 때문이다. 검찰은 또 이들의 감정과 별도로 국립현대미술관에도 논란 작품들에 대한 과학적 분석'감정을 의뢰, 적외선'X-선'현미경 검사를 진행 중이라 한다.
○…이번 위작 시비는 지난 3월 한국미술품감정협회가 서울옥션에 나온 이중섭 작품과 그의 50주기 기념 미발표작전시준비위원회 소장 작품들이 위작이라고 주장하는 데서 비롯됐다. 이에 이중섭의 차남이 한국미술품감정협회에 대해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면서 가열됐다. 특히 유족들까지 소장해 온 그림이라고 나선 사정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비극이다.
○…이중섭과 박수근의 불우했던 생애를 떠올리면 기가 차는 일이다. 가난에 찌들었던 '빼어난 화가'들이 돈 때문에 또 수모를 당하는 꼴이 아니고 뭔가.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먹는다'는 말을 '돈은 사기꾼이 먹는다'로 바꿔야 할 판이다. 하지만 가짜가 어디 그림뿐이랴. 우리 사회가 '짝퉁 천국'이라 해도 지나치지만은 않을 게다. 가짜를 배격하고 진짜만 받드는 사회가 더 멀어지는 것 같아 슬프다.
이태수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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