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비석 대신 가훈비 세웠죠"…봉무공원 달성 서씨 묘역

'옛 것을 익혀 오늘에 되새긴다.'

조상의 말씀을 새겨 자녀교육의 지침서로 삼으려는 한 집안의 가훈비가 눈길을 끌고 있다.

대구시 동구 봉무동 봉무공원. 단산지 못둑을 지나 만보산책로를 300m쯤 걷다 언덕쪽으로 다시 10여m 오르다 보면 달성 서씨 서진달공의 묘를 만나게 된다. 앞에는 비석 대신 가훈비가 세워져 있다. 여기에는 살아생전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행적을 기록하고 그들이 자식들에게 들려줬던 교육 지침서가 빼곡이 새겨져 있다.

그 내용이 무척 구수하고 재미있다. "할아버지께서는 소를 길러 대구의 큰 소시장에서 파셨는데 한번은 사려는 사람과 가격은 다 결정하고 매매가 이뤄질 무렵 '이 소는 다 좋은데 한 번씩 사람을 떠받는 버릇이 있다'고 말씀하셔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놀랬으나 할아버지의 정직하고 솔직하신 말씀에 감동을 받아 매매가 잘 이뤄졌다."

이 묘비는 지난 2002년 손자인 서문교씨가 묘를 재단장하면서 할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후손들이 가슴속에 새기고 따르자는 뜻에서 세웠다.

묘비에는 이어 그의 할머니가 항상 자식들에게 들려주셨던 또 하나의 이야기를 옮겨 적어 놓았다.

'장남은 집안을 이어가게 하려 서당에 보내고 둘째는 가업을 잇기 위해 소를 키우며 농사일을 시킨 한 어머니가 있었는데 하루는 둘째가 책만 끼고 노는 것 같은 형이 못마땅해 자신도 서당에 보내달라고 했다. 그 날로 그 어머니는 형은 농사일을, 동생은 서당으로 보냈으나 한달도 되지 못해 동생이 다시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새 버선을 신고 아침부터 밤늦게 까지 서당에 앉아 공부를 하려니 죽을 지경이었던 것. 그 후 동생은 육체적인 노력보다 정신적인 노력이 더 고되다는 것을 깨닫고 말을 듣지 않는 소에게 "너도 새 버선을 신고 서당 가서 공부를 한번 해봐야 알겠느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후손들은 이 가훈비에 "남이 하는 것을 보면 다 쉬워 보이지만 실제 해보면 쉽게 성공하는 길은 없으니 피땀을 흘리는 노력 없이는 크게 성공할 수 없다"는 그 말씀들을 깊이 새기겠다는 약속을 함께 적어놓고 있다.

증손자인 서순천(문성병원장)씨는 "교훈을 주시던 그 말씀들이 건강한 가족 정신을 이어가는 비결이 되고 있다"며 "힘들거나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경우 그 말씀들을 실천하려 노력하게 된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대현 진사고시 서화협회 회장은 "가문의 철학과 처세술, 가치관 등 가르침이 전승 유지된다면 가정의 화목은 물론이고 밝은 사회를 이루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두성기자 dschoi@imaeil.com

사진설명: 조상의 말씀을 새겨 자녀교육의 지침으로 삼으려는 한 집안의 가훈비가 눈길을 끈다. 봉무공원에 산책 나온 가족들이 가훈비를 읽어보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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