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여름철 꽃밭에는

무더위가 한층 기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연일 매스컴에는 찌는 듯한 더위라고 호들갑을 떨고 있고 모기도 심심찮게 날아다니며 사람들을 귀찮게 합니다. 극성스럽게 울어대는 매미는 예전과 같이 숨을 고르고 있습니다.

여름철 꽃밭에는 갖가지 여름 꽃들이 피어납니다. 꽃잎을 따서 손톱에 물들이는 봉선화, 넝쿨을 뻗어 받침대를 감고 올라가는 나팔꽃, 건드리면 수술이 움직이는 채송화. 이 모든 꽃들이 집안을 화사하게 수놓습니다.

몇 해 전에만 해도 도심에서 벌들이 잉잉거리고 나비들이 무수히 날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지금에는 벌과 나비들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모두 무더운 여름을 힘겹게 견뎌내며 이겨내고 있습니다. 꽃들도 자태를 뽐내느라 앞 다투어 안간힘을 다하느라 애씁니다.

한여름 울타리 밑이나 우물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봉선화의 붉고 흰 꽃들이 집안을 한결 밝게 해 줍니다. 봉선화 꽃잎은 색깔이 고우면서도 물기가 많아서 물감처럼 물이 잘 들여집니다. 봉선화의 꽃과 잎을 소복이 따서 백반을 섞어 돌로 찧은 다음 손톱에다 붙이고 헝겊으로 싸고는 실을 칭칭 감아 동여맵니다. 그렇게 한 다음 하룻밤을 자고 나면 빨갛게 물들어져 보기에도 여간 아름답지 않습니다. 아내는 어릴 적에 봉선화 꽃잎을 싸맨 손가락을 꼭 쥐고 자다 잠을 설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랍니다. 아침에 일어나 물들여졌다고 신바람이 나서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자랑도 하였다나요. 어릴 적에 손톱을 곱게 물들이던 추억은 지금의 긁으면 벗겨져 내리는 매니큐어에 비할 바가 못 되지요. 봉선화는 우리 민족의 정서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꽃으로 '울 밑에선 봉숭아'로도 통하게 되었습니다.

맑게 갠 여름날 아침, 어둠이 채 밀려나기도 전에 나팔꽃은 비비꼬인 나선상의 뾰족한 봉우리를 내밀고 어슴푸레 밝아오는 햇빛을 받아 곱게 피어납니다. 나팔꽃은 주위의 물체를 왼쪽으로 감고 올라가면서 무성하게 울타리를 이루어 활짝 핀 꽃으로 집안의 분위기를 한결 밝게 해 줍니다. 나팔꽃이란 이름은 꽃 모양이 영락없이 나팔 모양이라서 붙은 듯 합니다. 나팔꽃은 아래쪽에 있는 것부터 피기 시작하여 차차 위에 있는 꽃으로 피어 가는데 한번 진 꽃은 다시 피지 않습니다. 붉게 물든 진홍색의 꽃들은 청아하고 눈부실 정도이며 자줏빛 꽃잎은 요염하기까지 합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꽃이 아침 일찍 피었다가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면 점점 볼품없이 오그라드므로 꽃의 수명이 대단히 짧지만 그 사이에 씨를 맺습니다. 나팔꽃을 축소시킨 것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분꽃도 꽃밭 한 자리에 제 몫을 하며 숨쉬고 있습니다. 맨드라미와 샐비어도 못질 새라 향기를 뽐내고 있습니다. 샐비어는 따서 단물을 쪽 빨아 먹고는 버리는 재미도 있지요.

여름이 깊어가면서 마당 한 쪽에서는 붉은색, 흰색, 자주색, 분홍색, 노란색의 다채로운 채송화가 어우러져 활짝 피어납니다. 채송화는 공해가 심한 도시에서도 잘자랍니다. 여름철 꽃밭에서 뭇 꽃을 제치고 모든 사랑을 받을 만큼 꽃색이 다채롭고 아름답습니다. 시골 간이역에서 기차를 타고 가다보면 철길 모래사이에서도 귀여운 꽃을 피우고 있는 채송화를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한편 꽃밭 한 귀퉁이에는 호박꽃이 수더분하게 자기 딴에는 노란 자태를 뽐내며 자리잡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꽃밭을 가지고 있습니다. 각자의 꽃밭에는 크기도 향기도 다른 꽃이 피어납니다. 꽃밭의 아우성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키높이 만큼의 꽃이 피는데 오늘도 무수한 꽃씨를 날려봅니다. 꽃밭은 남이 보는 즐거움으로 오늘도 그 자리에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홍승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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