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책 읽기와 사교

요즘 우리지역에서 드러날 듯 말 듯 조용히 번져나가는 움직임이 있다. '책 읽기'이다. 지난해 바쁜 일상이나마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흐름을 짚어가자며 경영자 독서모임이 만들어질 때만 해도 대구경북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잘 어울릴까 염려스럽더니, 이제는 저마다 다양한 목적을 가진 독서 동아리가 여럿 생겨났다.

전문지식 학습 능력을 키우고 창의적인 공직 분위기를 일깨우고자 공무원들이 서로 어울리는가 하면, 삶과 윤리적 원칙의 흔들림이 염려스러워 신앙인들도 동호회를 꾸리기 시작했다. 그 뜻하는 바가 어떠하든 모두 흐뭇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대구는 그동안 전국 대도시 가운데 도서 판매가 비교적 저조한 곳으로 알려져 왔다. 주민 독서량이 크게 모자란다는 평가를 받아왔고, 문화예술 분야 소비활동마저 뚜렷한 적극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점도 통계를 통해 알 수 있다.

반면 대구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여가 보내기 유형은 '사교'와 '스포츠 관람'이었다. 특히 사교는 어느 도시보다 활발해서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다보니 생각이나 행동이 일정한 울타리 안에 머물 뿐 밖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여기저기서 지역혁신을 부르짖고, 경제위기를 극복하자고 호소하지만 합의가 이루어지기 어려웠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책 읽기와 사교의 차이! 그래서 새삼 잔잔한 독서 열기가 예사롭지 않다.

무엇보다 책 읽기는 개인과 조직, 사회를 바꿔 놓는다. 개인의 지식, 정보, 창의성을 북돋우는 한편 상호 소통의 길까지 열어준다. 일단 책 읽기를 통해 지식과 정보로 무장한 사람은 대부분 소극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매사 자발성을 발휘한다.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췄기에 능동적인 사고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울타리의식에 매달리지 않고 세계와 접속할 만큼 개방적이다. 스스로 학습이 가능해졌다 하더라도 문을 활짝 열어 자신의 지식과 정보를 나누려는 자세가 미약하면 그저 작은 진전에 그칠 따름일텐데, 이와 다르다. 오랜 습성을 버린 대신 상호 이해, 생각과 느낌 공유의 중요성, 변화의 불가피성을 잘 깨쳤기에 그렇다. 그러므로 책 읽기는 자칫 가벼운 움직임으로 여겨지기 쉬우나 힘세다.

실제로 삼성전자 구미공장의 IMF 위기극복 사례는 책 읽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바 있다. 당시 곤란에 처한 기업을 구하고, 구조조정으로 의욕상실에 빠진 근로자들의 작업의지를 되살리기 위해 삼성전자가 내세운 정책은 다름 아닌 '전 직원 책 읽기'였다. 회사가 어려울수록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대여섯 명이 모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성격을 궁금해 하면 강사를 제공했으며, 누구든지 자기 관심사에 대해 깊이 이해하도록 도왔다. 그렇게 하자 "열심히 일하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조직문화는 긍정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당연히 회사도 침체를 박차고 일어났다.

오늘날처럼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일방적인 지시가 효과를 낳기 어렵다. 구성원들이 흥에 겨워 자발적으로 참여할 때 큰 결실을 거둔다. 삼성전자 구미공장은 신입사원에서 공장장까지 모두가 책 읽기에 즐겁게 동참함으로써 허약한 조직을 매우 강하고 경쟁력 있는 조직으로 변모시켰다. 세상을 대하는 눈과 인생관도 달라졌다.

인간은 문화를 만들고, 문화는 다시 인간의 행위를 구속한다. 모처럼 지역에서 일기 시작한 책 읽기 움직임이 상쾌하고 역동적인 문화를 생산하면서 재도약의 계기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오창균 대구경북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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