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人生에는 은퇴가 없다-(1)내 이름은 '일의근'

사람들에겐 자신만의 이미지가 있다. 이미지는 내가 만들어 나가는 것이지만 나에 대한 상대방의 평가이기도 하다. 공무원이 된 지 올해로 만 45년. 사람들에게 비친 내 이미지는 천상 '일'인 모양이다. 우리 공직사회에서는 나를 '일의근'이라 부른다.

1961년, 세상이 어수선하던 시절 공무원을 시작해서 청도군, 경북도, 그리고 내무부와 청와대를 거쳐 민선도지사로 다시 돌아왔다. 때론 힘들고 고달팠지만 요령을 피울 줄 몰랐다. 변화를 두려워하지도, 일을 하는데 망설이지도 않았다.

내무부에서 근무하던 중 새마을운동을 전담하는 조직이 신설되면서 새마을기획 업무를 맡았다. 생소한 업무인 데다 국내에는 참고할 만한 선례조차 없었다. 세계 각국의 국민운동사를 찾아보기도 했고 지역개발 관련 교수들과 함께 현장으로 분주히 뛰어다녔다. 그런 와중에 하루에도 몇 차례 대통령의 지시가 내려오고 그때마다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그러다보니 남들이 기피하는 격무부서와 기획부서로 불려다녔다. 사무실 창 밖으로 불 꺼진 서울의 밤을 내려다보며 스스로 의지를 다졌던 기억, 꼬박 밤을 새우고 부스스한 얼굴로 먹었던 청진동 해장국의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런 모습을 보고 누군가 '일이 있는 곳에 이의근이 있다'고 말했고 주위에서 자꾸 되풀이하다 보니 '일의근'은 나의 이미지가 되어 버린 모양이다. 혼자 고생하는 것도 아닌데 괜한 말치레다 싶어 처음에는 어색하고 면구스러웠지만 싫지는 않았다.

1995년 청와대 행정수석비서관을 그만두고 선거에 뛰어든다고 했을 때도 만류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평생 공무원만 해 온 사람이 어떻게 그 힘든 선거를 치르겠느냐"며 걱정했다. 나도 걱정은 됐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지방과 중앙부서, 그리고 청와대에서 국정을 디자인한 경험으로 '위대한 경북'을 만들 자신이 있었다. 도민들도 나의 그런 마음을 이해해 준 것 같았다. 결국 5만여 표차로 당선됐고 이후 선거를 치를수록 지지도는 높아져 세 번째 선거에서는 85.5%에 이르렀다. 지난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대구에서 만났을 때 '이 지사는 정치경험도 없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선거를 잘 합니까?'라며 비결을 가르쳐 달라고 해 함께 웃은 적도 있다.

나는 요즘도 새벽 5시면 일어난다. 출근하기까지 이 세 시간은 나에게 남모르는 집중근무 시간이다. 경북이 넓다 보니 낮 시간은 차 안에서 보내야 할 때가 많다. 신문을 보고, 직원들이 밤에 작성한 보고서를 검토하는 것도 이때다. 많이들 궁금해 하지만 건강관리를 위해 특별히 하는 것은 없다. 새벽에 아내와 같이 도청 안 공원을 산책하는 것이 전부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일하는 데 큰 무리를 느끼지는 않는다. 건강하니 일을 할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일이 곧 보약'이라는 말이 맞는 것도 같다.

그러나 남들이 '일의근'으로 부르는 사이 가족들에겐 소홀했던 것 같다. 가족들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뿐이다. 오늘의 '일의근'은 나만의 몫이 아니다. 함께 일해 온 수많은 선후배 공무원들이 있다. 특히 '일'지사를 만나 함께 고생하는 지금의 동료 공무원들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낀다.

◇ 오늘부터 지역 명사들의 회고담을 본란 '나의 삶 나의 꿈' 코너에 주 2회씩 연재합니다. 이의근 경북도지사는 앞으로 18회 연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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