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통령의 바캉스

-'노무현 대통령' 청남대 반납 후 휴가 때 호텔 등 전전'-

바캉스 인파가 전국의 산과 바다를 뒤덮고 있는 휴가 시즌에 조용하게 쉴 데가 없는 노 대통령의 딱한 처지를 보도한 어느 주간신문의 제목이다.

오늘부터 여름 휴가에 들어간 노 대통령이 마땅하게 푹 쉴 만한 휴양지를 마련해 놓지 못해 이번에도 강원도 산간 지방 쪽으로나 쉬러 간다고 한다.

경호 문제도 그렇거니와 10대들처럼 계곡에 텐트 치고 잘 수도 없는 처지고 영부인과 민박집에서 반바지 러닝 차림으로 지낼 수도 없어 이래저래 모처럼의 휴가가 '집시' 여행처럼 편안하지가 못할 것 같다는 얘기다.

그래서 경호팀과 비서실에서는 2년 전 대통령 취임 직후 휴양 시설이던 청남대를 충북도에 덜렁 반납해 버린 걸 후회하고 있는 분위기도 있다고 한다.

역대 대통령들이 20년 가까이 이용해 온 공식 휴양 시설을 굳이 대선 공약으로까지 내걸어 반납하겠다며 내준 것이 옳은 결정이었느냐는 아쉬운 목소리도 다시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멀쩡한 전용 휴양 시설을 권위 타파와 개혁의 명분 아래 민간에 개방해 버리고 난 뒤 자신은 2003년 그해 여름부터 군부대 휴양소에서 휴가를 보냈다. 지난해 여름휴가 땐 시쳇말로 아예 '방콕'했다. 창덕궁 산책, 인형극 관람을 빼고는 청와대 방 안에서 소일하며 휴가를 때웠던 것이다.

마침 여름휴가철이라 대통령의 쉼터 얘기를 꺼내 본 것은 서민들 못잖게 머리 아프고 스트레스 받을 대통령에게도 적절한 공적 휴식처는 있는 것이 좋고 정치적 인기나 사랑과 관계없이 지도자인 대통령에게 쉴 수 있는 휴양 시설을 마련해 주는 것은 바람직한 일일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미국의 부시도 전용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카우보이 청바지 차림으로 인터뷰하는 모습에서 권위나 호사스러움보다는 실용과 인간적 냄새가 풍겨 세계인들에게 호감을 준다. 물론 노 대통령 자신이 굳이 있던 휴양 시설도 내던지고 이리저리 떠돌며 휴가를 보내는 불편을 겪는 건 스스로 자초한 일일 수 있다. 올인하는 스타일의 사람일수록 빡빡한 일상을 벗어던지고 조용한 휴양지에서 휴식의 여유를 갖다 보면 세상을 보는 또 다른 눈이 뜨일 때가 있다. 청남대 반납 같은 정치 공약도 한낱 개혁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어했던 강박 관념에서 비롯된 연출은 아니었던가라는 자성이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휴양지 숲길을 거닐다 혹 사마귀 벌레라도 볼라치면 '천하에 나보다 더 잘난 자가 있느냐'며 수레(민심의 흐름) 앞에 맞서는 당랑거철(螳螂拒轍)의 자만의 도(道)에 대해서도 묵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들판을 거닐다 한가로이 풀 뜯는 말을 보았을때 '말(馬)도 너무 부리면 지쳐 쓰러져 버리듯이 말(言)도 너무 자주 해대면 말의 값어치가 죽어 버린다'는 '언변의 지혜'에 대해서도 되새겨 볼 수 있을 것이다. 숲 속 새 둥지에 담긴 새 알을 볼 때면 '달걀을 놓고 벌써 새벽을 말하는'성급한 기자회견이나 편짓글 대신 달걀이 병아리가 되고 커서 수탉이 돼 새벽에 울지 안 울지는 두고 볼 일이라는 겸손과 기다림의 도(道)를 가다듬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개혁과 혁신의 구호와 스스로의 말들에 옭매여 사는 듯한 우리 노 대통령에게는 누구보다도 한 박자 쉬어가는 휴식이 필요해 보인다.

모든 분야에서 올인하는 듯한 집착이 강해 보여서다. 우리 대통령을 좀 편히 쉬게 해 줄 전용 별장을 다시 지어 주자. 휴식을 통해 '기다림의 도'와 '언변의 지혜'와 '당랑거철'의 순리를 가다듬으며 유연한 국정 구상을 할 수 있다면 전용 별장 하나쯤 드려서 아까울 것 없지 않겠는가.

金廷吉 명예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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