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년 한 우물' 야구 배트 제작자 정영철(61)씨

볼품 없는 나무덩이도 그의 손을 거치면 매끈한 야구 배트로 변신한다. 그가 만든 배트로 만들어진 홈런만도 셀 수 없을 정도다. 30년 동안 야구 배트를 제작해온 정영철(61)씨는 국내 프로 야구계에서 유명 인사다.

1976년부터 나무 배트를 제작해 30년 동안 한 우물만 파온 정씨는 "지인으로부터 곧 프로야구가 생긴다는 말을 듣고는 돈이 되겠다싶어 만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 발 앞선 정보를 바탕으로 나무 배트를 제작해 어린이들에게 팔아온 정씨는 82년 프로야구가 탄생하면서 전성기를 누렸다. 당시 전국적으로 나무 배트 제작자가 3, 4명에 불과했고 특히 정씨의 꼼꼼함이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알려지면서 주문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지역 연고 구단인 삼성 선수들뿐만 아니라 나머지 5개 구단 선수들도 시합차 대구에 오면 으레 정씨가 만든 배트를 찾곤 했다.

"개당 1만5천 원하던 배트가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다"며 "많을 때는 일꾼들을 7명까지 데리고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만수, 장태수, 허규옥 등 초기 프로야구 선수들 대부분은 그의 고객이었다. 또 당시 배트 제작자 중에서 유일하게 현업에서 활동하고 있다.

정씨는 "배트 재질로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물푸레나무가 최고"라고 말했다. 재질이 단단해 웬만해선 부러지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최근에는 미국에서 수입한 단풍나무로 만든 배트를 선수들이 선호한다고 덧붙였다.

배트를 제작할 때 가장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무게와 밸런스. 투수들의 구속이 빨라지면서 타자들은 휘두르기에 가벼운 850~860g의 배트를 원하는 것이 최근의 경향.

정씨는 3년전까지 '선진'이라는 상표를 사용했다. 때문에 요즘도 선수들로부터 '선진 아저씨'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하다. 하지만 상표명이 촌스럽다는 주변의 평가가 이어지면서 4년전 현재의 XR(랙스)로 상표를 바꿨고 2002년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공인을 받았다.

또 3년전에는 평소 알던 지인에게 총판을 완전히 넘겼다. 그 전까지 좋은 배트만 만들면 된다는 고집을 앞세웠지만 판매망과 상표가 중요한 시대의 흐름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

그럼에도 최근에는 수지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 전국적으로 3, 4곳에 지나지 않던 배트 제작업체가 2년전부터 급격히 늘어나 지금은 9곳에 이른다. 후발업체들은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10만 원 상당의 배트를 프로 선수들에게 무료로 공급하면서 가격 파괴가 이어졌다는 것. 하지만 정씨는 배트를 무료로 건네지 않는다. 30년 땀과 열정이 배어있는 자신의 배트를 무료로 주는 것은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

국내 최고의 야구 배트 제작자라는 평가를 받는 정씨는 "힘이 남아 있는 한 배트 제작에 심혈을 기울일 것"이라며 뜨거운 열정을 과시했다.

이창환기자 lc156@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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