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에게 물었더니

스승은 약초 캐러 가셨다 하네

지금 이 산 속 어디인가 있겠지만

구름이 너무 깊어 알 수가 없네

가도(賈島'779~843) '은자를 찾아갔다 못 만나고'

요즘의 휴대전화 시대에 이런 시를 감상하는 것은 어떨는지요? 깊은 산 속에 살고 있는 은자(隱者)를 찾아갔다가 못 만났다는 정황이 선계(仙界)의 장면처럼 느껴집니다. 미리 약속을 하고 간 것이 아니니 못 만나도 그만이고, 조금 기다리면 되겠지요. 그런데 지금 우리들의 의식을 붙드는 것은 찾아간 사람을 못 만났다는 사실이 아니라, 모든 것이 그냥 거기 그렇게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신기하게도 인간의 작위(作爲)와 이해를 넘어서게 해 주는 것 같습니다. 소나무와 동자, 약초 캐는 행위와 구름 깊은 그윽한 산 속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치 선계와 같은 초월공간을 슬쩍 들여다본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일상에 묶여서 끌려가듯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 시는 진정한 삶의 여유와 자유를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닐까요?

이진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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