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추억의 '쪽샘 마을'

경주(慶州) 대릉원 고분공원 옆의 '쪽샘 마을'은 지난날 유흥가로 명성이 자자했었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엔 '신라의 달밤'을 즐기러 오는 사람들로 들끓었다고 한다. 경주엔 통금이 없었으므로 더욱 그랬을 게다. 광복 이후 오랜 세월 동안 밤이 되면 관광객과 술꾼, 시인'묵객들이 몰려 불야성(不夜城)을 이뤘던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최옥난'백옥자'천매화'정매화'버드나무'감나무'깨양나무'오륙공구 등은 바로 그런 추억의 공간들이었다.

◇'쪽샘'은 황남'황오동 초입에 있던 우물 이름이었다고 한다. 쪽박으로 '마르지 않는 샘'의 물을 떠먹을 수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우물물이 쪽빛이라는 데서 유래한다고 알려지기도 한다. 일제 때는 날렸던 퇴기(退妓)들이 몰려들면서 1960년대부터 70년대까지는 요정'주막 등이 100여 집이나 들어서 흥청거렸단다. 시인 유치환'박목월'조지훈'서정주 등이 남긴 낭만적인 일화들만도 무수히 많다.

◇이미 경주의 슬럼으로 전락한 이 마을이 고분공원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모양이다. 경주시가 한옥들을 헐어내고 70여 기의 신라 시대 고분을 복원해 관광 자원화하는 작업에 나섰다. 2002년부터 전체 주택 820채 중 388채를 사들였고, 올해 52채를 사들이며, 공원 조성에 들어가 2009년 완공할 계획이라 한다.

◇당초 전체 사업비 2천304억 원을 들여 2011년에 완료할 예정이었으나 최근 문화관광부가 경주를 '역사문화도시'로 만드는 작업에 나서면서 보다 빠른 물살을 타게 된 셈이다. 경주시는 앞으로 고분을 발굴한 뒤 봉분을 만들고, 지하에 대규모 전시실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무덤 아래 코스를 돌면서 고분마다 출토된 유물들을 감상할 수 있게 하며, 올 연말이면 공원 윤곽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마을이 고분군 사적으로 지정된 이후 주민들의 고통이 적지 않다고 울상들이다. 지금 사는 집을 고치려 해도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땅값이 제대로 오르지 않아 보상금도 적을 수밖에 없다. 아무튼 '쪽샘 마을'은 이제 숱한 추억과 낭만, 많은 사람들의 애환을 거느리며 역사의 뒤안길로 영영 사라지게 된다. 이곳을 즐겨 찾던 주당들, 특히 이곳 주민들에게는 서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태수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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