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무작정 도전… "1시간 50분 어떻게 흘렀는지"

본지 장성현 기자 연극무대 체험기

"이번 작품에 출연 한번 하시죠?"

지난 6월 극단 온누리의 정기공연 '피박'이 끝난 뒤풀이 자리. 뜬금없는 제안에 용감하게 "그러마"고 대답한 게 화근이었다. '그냥 서 있는 나무나 지나가는 행인2 정도겠지. 무대 경험이라곤 전무한 생 초보에게 무얼 시키겠나' 했던 게 착각이었다. 얼떨결에 제2회 호러연극제 참가작인 극단 온누리의 '흉가에 볕들어라'(이해제 작·이국희 연출) 공연(8월 2~5일)에 출연하기로 했다.

지난 6월 28일, 첫 대본 연습 시간. 대구 중구 동인동에 위치한 연습장에 들어섰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낡은 교회 건물. 비 올 때 물 새는 것 빼고는 그런 대로 쓸 만하단다.

이해제 원작의 '흉가에 볕들어라'는 불량한 집귀신을 소재로 재물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과 파멸을 다룬 작품이다. 극 중 집주인의 먼 친척이자 술주정뱅이인 성주신 역이 주어졌다. 대본을 채 읽을 새도 없이 첫 대본 연습이 시작됐다. "미리 감정을 넣지 말라"는 연출자의 지적이 날아온다. 감정이나 성격이 미리 굳어져 버리면 극 전개에 맞춰 적절하게 변화를 주기가 어렵다는 것.

연기는 물론 연기자의 몫이다. 그러나 배우의 연기가 작품 전체에 녹아들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연출자의 몫. "배우 한두 명의 미숙한 연기가 작품 전체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연출자의 뜨끔한 당부가 비수처럼 가슴에 꽂힌다.

열흘 간의 대본 연습을 마치고 7월 11일 본격적인 무대 연출 연습에 돌입했다. 배우들의 동작과 동선, 구체적인 움직임을 결정하고 완성해 가는 단계, 이를 '블록킹'(blocking)이라고도 한다. 대본 연습 때는 깨닫지 못했던 문제들이 하나둘씩 머리를 들이민다. 기본적인 발성법은 물론, 이른바 '시동대'라고 불리는 연기의 기본조차 모르니 거의 마구잡이나 다름없다. '시동대'는 시선, 동작, 대사의 줄임말. 연기를 할 때 시선을 먼저 돌리고 동작이 이어진 뒤에 대사를 해야 한다는 뜻. 관객들은 대사보다는 배우의 시선과 동작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대사가 없을 때는 손은 뭘 해야 할지, 시선은 어디 둬야 할지조차 모르겠다. 그리 넓지 않은 무대이건만 한 발 떼 놓기도 힘들다.

배우들이 본격적인 무대 연습에 들어가면 스태프들도 바빠지기 시작한다. 무대 의상과 소품, 무대 제작을 맡은 스태프들은 미리 대본을 읽고 컨셉을 정한 뒤 연출자와 몇 차례 상의를 거쳐 필요한 물품을 마련한다.

D-2. 공연 이틀 전, 무대 세트에서 최종적으로 배우들의 동선과 동작을 맞추고 음향과 조명을 세팅했다. 2일, 드디어 D-데이. 최종 리허설을 마치자 긴장감이 엄습했다. '혹시, 대사를 까먹으면 어떡하지?' 떨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켰다. 분장을 마친 배우들은 대기실에서 각자 대사를 중얼거리거나 동작을 반복하며 공연을 준비한다. 공연 5분 전, 긴장감이 극에 달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며 '잘할 수 있다.' 암만 되뇌어도 별무소득.

드디어 무대에 오르고 예상치 못한 관객의 반응에 움츠러들기도, 가슴을 펴기도 하며 1시간 50분이 흘렀다. 해냈다는 안도감과 아쉬움, 뿌듯함.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가슴 속을 훼훼 휘감고 나간다.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사진: 매일신문 연극담당 장성현 기자(가운데)가 제2회 호러연극제 극단 온누리의 '흉가에 볕들어라' 무대에 섰다. 정운철기자 wo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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