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의 불법도청 중간조사결과 발표로 과거정권이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무차별적으로 도청을 일삼는 등 불법 엿듣기 행각의 전모가 상당부분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국정원 발표내용 중 일부는 '안기부 X파일' 파문 이후 그동안 밝혀진 것과 아귀가 맞아 떨어지지 않거나 관련 의혹이 명쾌히 해명되지 못해 이 부분은 앞으로 전방위 도청수사에 나설 검찰의 몫으로 남겨졌다.
◇국정원 수거·폐기 제대로 했나=국정원은 1999년 11월 하순께 공씨가 도청테이프와 녹취록을 유출시켜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공씨를 설득, 12월 4일 보안과장을 통해 녹음테이프 261개와 녹취록 5권 2천300여 쪽을 전달받아 12월 하순께 소각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검찰이 지난달 27일 공운영씨 자택 압수수색 결과 발견한 녹음테이프 274개, 녹취록 15권 3천여 쪽과 왜 분량 면에서 차이가 나는지에 대한 분명한 설명은 되지 못한다.
국정원은 녹취록 분량이 700여 쪽가량 차이가 나는 이유에 대해 공씨가 국정원에 녹취록을 반납하기 전에 같은 녹취록을 이중삼중으로 복사한 경우가 많았고 편철 당시 권당 쪽수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아무리 복사가 중복됐다고 하더라도 700여 쪽이나 차이가 난다는 점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또한 테이프 개수 면에서 13개의 차이가 나는 이유에 대해서도 국정원은 이날 아무런 해명도 내놓지 않아 국정원이 당시 수거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풀기에는 미흡하다. 국정원이 자체적으로 수거 및 폐기 과정을 추가 조사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검찰도 향후 이 부분을 수사한다는 방침이어서 수사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지원-천용택씨 진실게임(?)=천용택 당시 국정원장이 도청테이프 유출 사실을 알게 된 경위나 시점을 놓고 박지원 당시 문화부 장관과 진술이 엇갈리고 있다.
국정원 조사 결과 천 전 원장은 당시 엄모 국내담당 차장을 통해 불법 테이프가 박 전 장관에게 청탁용으로 제시되고 삼성에도 공갈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며 1999년 11월 하순 이건모 감찰실장에게 회수를 지시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는 박 전 장관이 최근 일부 언론과 만난 자리에서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1999년 9월 말이나 10월 초에 박인회씨로부터 도청테이프와 녹취록을 받았고 곧바로 천 원장에게 전화로 신고를 했다"는 주장과 아귀가 잘 맞지 않는 부분이다.
엄 차장을 통해 테이프 유출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한 천 전 원장과 달리 박 전 장관은 직접 천 전 원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는 부분, 고지 시점이 9월 말∼10월 초라는 박 전 장관의 진술과 달리 천 전 원장은 11월 하순께 회수를 지시한 부분 등이 의문이다.
국정원의 해명이 맞다면 박 장관은 바로 신고했다는 진술과 달리 최대 두 달 이상 테이프와 녹취록을 갖고 있었던 것이 되고 박 장관의 말이 옳다면 천 원장은 유출사실을 알고도 최장 두 달 이상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셈이 된다.
다만 6년 가까이 지난 오래된 일이어서 서로 기억의 차이 때문에 시기나 경위에 대한 설명이 다를 수 있어 이 부분도 검찰이 규명해야 할 대목이다.
◇DJ시절 도청자료 다 폐기됐나=국정원은 이날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도 불법도청이 실시됐다는 사실을 고백하면서 관련자료는 감청 담당 부서가 해체된 2002년 3월 모두 소각했다고 밝혔다.
2002년 3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으로 국가기관 보유 감청장비의 국회신고가 의무화되고 김대중 대통령의 도청 철폐 및 신건 당시 국정원장의 의지로 감청조직의 해체가 이뤄졌다는 것.
그러나 이번 공운영씨 사건을 계기로 1997년 이전에 제작된 도청 테이프와 녹취록이 지금까지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DJ 시절에 제작된 테이프가 과연 국정원 말처럼 온전히 소각됐는지 의문이 남는다.
대표적인 예가 2002년 대선 정국을 뜨겁게 달궜던 한나라당과 민주당 간 도청파문 논란. 당시 한나라당은 국정원이 광범위한 도청활동을 해왔다고 주장하며 수차례 도청문건을 공개했다.
이 문건에는 2002년 2월 24일 청와대 박지원 당시 특보와 이재신 당시 민정수석, 2월 6일 모 방송사 보도국장과 박지원 당시 특보, 2월 20일 김현섭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관과 손영래 당시 국세청장, 1월 29일 정대철 당시 민주당 의원과 이부영 당시 한나라당 의원의 대화내용 등이 들어가 있었다.
2002년 3월 이전의 도청자료를 모두 소각했다는 국정원 주장과 달리 문건 중 일부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물론 검찰은 당시 도청문건을 둘러싼 고소·고발사건을 수사한 결과 올 4월 "당시 문건의 글자체나 형식 등이 국정원 내부 자료와 달라 국정원의 문건으로 보기 어렵다"고 결론내 이 문건의 출처가 국정원이 아닐 가능성은 열려 있다.
그러나 검찰은 이 문건이 사설 정보업체 등의 문건이 재가공됐을 가능성과 사설 도청팀의 문건일 가능성 등에 대해 입증할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점에서 과연 DJ 시절의 도청자료가 완전히 소각됐는지 검찰이 다시 한 번 더 짚어봐야 한다는 게 법조계 주변의 주문이다.
◇불법도청 사라진 것 맞나=국정원 설명대로 과연 2002년 3월 이후 불법도청이 근절됐느냐에 대한 의문도 남아 있다. 2002년 정치권의 도청파문 당시 한나라당에서 2002년 3월 이후에 작성된 안기부 도청문건이라고 주장하는 자료들이 제시됐기 때문이다.
물론 이 자료 역시 올 4월 검찰 수사 결과 국정원 문건으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이 났지만 당시 문건에 나타난 내용의 일정 부분은 이후 검찰 수사 등을 통해 사실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그냥 무시하고 지나칠 수만도 없는 형국이다.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은 2002년 9월 국정감사에서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비리 의혹을 제기하면서 2002년 5월과 9월 국정원이 한화 측을 도청했다는 문건을 제시한 바 있다.
또 정 의원은 대북송금 의혹과 관련, "2002년 10월 10일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이 검찰에 대북 4억 달러 비밀지원 의혹에 대한 계좌추적 자제를 요청했다"는 도청내용을 소개했는데 대북송금 의혹은 2003년 특검에서 상당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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