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26일, 언더우드 가문의 4세인 원한광(元漢光·62) 박사가 인천공항에서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언더우드 가문이 120년 전 기독교 선교사의 자격으로 아펜젤러 부부와 함께 이 땅에 첫발을 내디뎠던 언더우드 1세 때부터 4대에 걸쳐 맺어온 한국과의 인연을 정리하는 순간이었다. 그의 출국은 조용하게 이루어졌다. 이는 그의 바람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오랜 세월 이 나라를 위해 봉사했던 외국인 가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관심에 대한 반영이기도 했다. 이 책은 한국과 가장 오랫동안 깊은 인연을 맺은 서양인 가문 언더우드가에 대한 기록이다.
언더우드 일가는 1885년 언더우드 1세인 원두우(元杜尤·호러스 G 언더우드)씨가 우리 나라 최초의 장로교 선교사로 입국한 이후 정동에서 고아 기숙학교인 '언더우드 학당'을 열면서 시작됐다. 이어 언더우드 1세는 언더우드 타자기 회사를 통해 큰돈을 벌었던 자신의 큰형 존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등 다방면으로 노력을 펼친 끝에 1915년 연세대의 전신인 조선기독교대학을 설립했다. 그리고 그는 이듬해인 1916년 10월 하늘의 부름을 받는다.
한국에서 출생해 아버지를 따라 선교사를 대물림한 2세 원한경은 1919년 3·1운동 당시 수원 제암리에서 일제의 기독교인 학살사건이 일어나자 직접 수원 일대를 돌아다니며 참상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고 상황을 탐문해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세계에 적극 알렸다. 또 3세인 원일한은 6·25전쟁 당시 아버지 원한경과 함께 자진해서 현역 군인으로 참전, UN 통역사가 돼 동생들과 함께 휴전회담의 성공을 이끌어냈다.
이런 언더우드 가문의 한국과의 인연은 우연히 시작됐다. 오래 전부터 인도 선교사를 꿈꿔왔던 언더우드 1세는 인도 선교사로 갈 것을 요청하는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으려는 순간 '한국에 갈 사람은 아무도 없구나'라는 알 수 없는 목소리를 듣는다. 당시 미국인들에게 알려진 한국은 '꼬레'라고 불리는 중국 근처의 한 섬에 불과했다. 게다가 유럽의 선교사들이 붙잡혀 모진 고문을 받고 죽임을 당했던 나라라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그는 한국행을 강행, 1885년 4월 5일 부활절에 제물포에 첫발을 내딛는다.
연세대 신과대학 부학장인 저자 서정민 교수는 "오랜 시간 자신들의 삶을 바쳐 이 땅의 근대화에 힘쓴 언더우드 가문의 역사와 업적을 기록으로 남기고 기억하는 것이 우리가 언더우드 가문에 되돌려줄 최소한의 보답이자 의무"라고 집필동기를 쓰고 있다.
정창룡기자 jc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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