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최효찬 지음/ 예담 펴냄

조선시대 '대치동 엄마', '기러기 아빠'들은 자녀들을 어떻게 가르쳤을까.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은 퇴계 이황 종가, 다산 정약용 종가, 경주 최부잣집 등 지조와 자긍심을 지켜오면서 자녀교육의 모범을 실천해온 대표 명문가 10곳의 자녀교육 비결을 소개하고 있다. 퇴계 이황과 서애 류성룡, 고산 윤선도, 다산 정약용 같은 이름난 인물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 중의 하나는 자녀교육에 열성적이었다는 점이다.

퇴계는 이미 500년 전에 '인맥 네트워크'를 중시하는 교육을 했는가 하면 근대교육이 체계화되기 훨씬 이전인 400여 년 전부터 체계적인 영재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실천했다. 퇴계는 학문이 뛰어난 자들이 서로 토론하며 공부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 터라 서로에게 친구로 소개해주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인맥 네트워크는 자연스럽게 명문가들의 혼맥 네트워크로 발전해 500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

재령 이씨 영해파 운악 종가는 '지고 밑져라'는 자녀교육을 엄격히 적용했다. 17대 종손인 이용태 삼보컴퓨터 창업자는 "어릴 때 동네 아이들에게 맞고 들어오면 칭찬을 해주셨고 반대로 때리고 들어오면 크게 혼을 내셨다"고 회상한다. 이씨는 '사랑방 문화'를 접목해 자녀교육에 솔선수범을 보이고 있다. 손님이 방문하면 반드시 어린 자녀를 불러 대화하고 토론하는 것을 듣게 한 것. 어릴 적부터 익힌 토론문화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18년을 유배지에서 보낸 고산 윤선도는 죽음을 앞두고 "중앙정계에 진출하지 말라. 혹 인연이 닿아서 벼슬자리에 오르더라도 그 자리에 연연하지 마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런 탓에 윤선도가 작고한 이후 고산가문은 권력을 멀리했다. 대신 법조인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경주 최부잣집은 300년 동안 모은 전 재산을 대학을 설립하는 데 기부하고 스스로 만석꾼의 지위를 반납해, 가문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한 것으로 유명하다. 경주 최부잣집은 최치원의 17대손인 최진립(1568~1636)과 아들 동량, 손자 국선에 이르러 재물이 쌓이면서 '진사 이상 벼슬 금지' 등과 같은 가훈을 실천해 28대손인 최준(1884~1970)에 이르기까지 12대 300년간 존경받는 부자로 명성을 누렸다. 300년 동안이나 만석꾼 집안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도 자녀교육에 있었고 만석꾼 지위를 스스로 포기한 것도 자녀교육에서 비롯된 것이다.

명문가들은 자녀교육을 위해 삶의 등불이 되는 지침이나 철학을 제시하고 그 원칙을 대대로 실천해왔다. 논산 파평 윤씨 노종파는 '선비 집안의 법도는 사치하지 않고 근검절약하는 것을 더없는 미덕으로 삼는다'는 것을 첫 번째 가훈으로 내세우고 실천했다. 또 다산 정약용은 유배 당시 자녀들에게 '반드시 서울 한복판에 살아야 한다'면서 서울입성이란 지침을 내렸다.

수백 년 동안 삶의 지혜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침은 특히 위기에 처했을 때 큰 힘을 발한다. 교육이 위기에 처했다고 개탄하는 요즘, 인성교육과 생활교육을 중시했던 조상들의 자녀교육법에서 지혜를 빌려볼 일이다.

최세정기자 beac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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