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내 생명과학자들이 세계 최초로 인간의 체세포와 난자만으로 인간 배아 줄기세포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그동안 난치병 치료를 위한 줄기세포 배양을 위해 동물의 난자에 체세포의 핵을 이식하는 방법이 사용되어 왔는데 인간의 세포와 난자를 이용해 성공한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오로지 이를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으로 부각시킬 뿐 연구에 뒤따르는 윤리적 문제나 부작용, 위험성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다.
인간배아 복제 및 연구는 곧바로 인간복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인간복제란 핵을 제공하는 원본 인간과 같은 유전자를 가진 새로운 인간개체를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인간배아 복제 또한 그와 다른 것이 아니다. 인간배아 복제란 엄격히 말해서 인간개체 복제를 의미하는 것이고 결국 같은 말이다. 인간복제와 배아복제라는 말은 그 의미에 있어서 전혀 차이가 없지만 굳이 표현을 달리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인간의 기본적인 양심의 소리를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려서 결국 인간배아를 생명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도일 것이다. 배아를 인간 생명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부 생명공학자들의 의견은 결국 인간 생명의 가치를 발달 단계에 따라서 차별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래서 배아가 태아보다, 태아는 어린이보다, 어린이는 성인보다 가치가 없는 존재로 인정하게 되는 크나큰 모순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또한 배아복제 과정을 통해서 수많은 인간배아들이 손상받게 될 것이며, 상당부분의 배아들은 쓰레기처럼 폐기처분될 것이 뻔하다. 결국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작은 인간 생명체들이 현미경 하에서 갖은 폭력을 당하며 무참히 살해되는 셈이다. 생명윤리학자들이 21세기를 현미경적 폭력의 시대라고 이미 예고한 바와 같이 항거할 수 없는 나약한 인간배아는 거대한 폭력 앞에 희생될 수밖에 없다. 더욱 놀라운 일은 "사람 난자를 이용하므로 윤리적 문제를 피할 수 있다"는 기사 내용이다. 그동안 동물의 난자를 이용한 인간배아 복제도 윤리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는데, 인간의 난자를 이용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또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생명공학의 '상업적 이윤 추구'이다. 곧 인간을 위한 봉사가 목적인 과학과 기술이 상업주의에 물들어 이윤 추구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생명공학의 상업적 이윤추구는 가치전도 현상을 낳고 있다. 목적이어야 할 인간이 수단이 되고 수단이어야 할 이윤이 궁극적 목적이 되는 것이다. 인간배아 복제에 관한 기술을 특허 내어 상업적 이익을 독점적으로 추구한다면 패륜적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전 세계 많은 생명공학자들은 인간배아 줄기세포가 아니라 성체 줄기세포(제대혈)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그동안 일부 생명공학자들의 '인간배아 줄기세포만이 난치병과 불치병의 유일한 대안'이라는 주장이 잘못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몇몇 국내 생명과학자들과 언론은 아직도 인간배아 줄기세포만이 유일한 대안이자 희망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사실 인간배아 줄기세포는 아직 검증된 바도 없으며 임상실험도 못하고 있는 상태다. 최근 성체 줄기세포의 임상실험 결과(척추 마비 환자 등)는 더 더욱 인간배아 줄기세포만이 난치병과 불치병의 유일한 대안이라는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인간배아만이 난, 불치병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생명과학자들과 언론은 마치 인간배아가 생명이든 아니든 아무런 문제를 삼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방법과 수단이야 어떻든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는 식이다. 과학과 기술은 언제나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고, 인간을 위한 봉사가 그 근본 목적이다. 과학과 기술의 존재 가치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과학과 기술이 결코 인간을 지배하거나,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판단하거나 결정할 수는 없다. 2세기의 저술가이자 법학자인 테르툴리아누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인간이 될 자는 이미 인간이다."(Homo est qui est futurus).
이창영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상임위원, 가톨릭신문사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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