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도서관에서는 매달 첫 번째 목요일이면 시민책마당이 열린다. 책 한 권을 정해 이에 대한 전문가의 분석을 듣고 토론하는 자리다. 3년째 꾸준히 계속되고 있는 시민책마당은 학생, 일반인 누구나 참가해 같은 책에 대한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열린 독서교실인 셈. 도서관에서 미리 공고하는 책을 자녀와 함께 읽은 뒤 참가하면 전문적인 서평과 함께 다양한 의견들을 들을 수 있으므로 마음 편히 한 번쯤 가볼 만하다. 이달의 주제 도서는 서울대 주경철 교수가 쓴 '문화로 읽는 세계사'. 발표는 경북대 역사교육과 김중락 교수가 맡았다. 김 교수의 발표를 통해 책읽기의 재미를 찾아보자.
역사 공부는 학교 다닐 때 했던 것처럼 연대와 사건의 순서를 달달 외우고 이름을 암기하는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의 의미를 해석해 바탕에 흐르고 있는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주경철 교수가 쓴 '문화로 읽는 세계사'는 제대로 된 역사읽기의 한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다. 연대표에서 벗어나 '문화'라는 코드에 따라 인간의 역사를 35개 장으로 나눠 새롭게 구성하면서 이야기는 시대와 시대를 넘나들며 이리저리 뻗어나간다. 한 가지 생각에 오랜 시간 몰두하기를 싫어하는 현대인의 입맛에 맞춰 한 편의 단막극처럼 진행되는 편집도 이 책의 장점이다.
▲상식을 뒤집는 시각
저자는 기존에 알고 있던 세계사 상식들을 뒤엎고 있다. 예를 들어 토인비의 '도전과 응전'이라는 역사 해석을 뒤집어 세계 문명이 홍수 통제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메소포타미아 초기 기록에 치수 관련 내용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중앙 집권화와 관개시설 정비가 시차를 두고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길가메시 서사시 편)
또 피라미드를 파라오의 통치 위업을 자랑하기 위한 강제노역의 산물로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견해도 내놓았다. 요즘 말로 일종의 '영세민 취로 사업'이라는 주장이다. 그 근거로 저자는 농한기에만 강제노역에 동원됐다는 점과 노역의 대가로 식량 지원이 이뤄졌다는 점을 지적했다.(이집트 문명 편)
또 알렉산더의 동방 원정으로 비롯된 헬레니즘 문화를 동양과 서양 문화의 융합으로 흔히 설명하고 있지만, 저자는 융합이 아니라 그리스 문화의 일방적인 확대였을 뿐이라고 지적하면서 피에 굶주리고 전쟁의 광기에 사로잡힌 영웅 알렉산더의 양면성을 이야기한다.(헬레니즘 편)
이 외에도 저자는 책 곳곳에서 기존의 역사 해석을 거부하며 그만의 독특한 해석법을 내놓아 읽는 이의 호기심을 한껏 자극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이미 상식으로 굳어진 해석을 그냥 받아들이지 않고 되묻는 시각은 같은 역사학자로서도 본받아야 할 부분"이라며 "하지만 저자의 지적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조심스레 곱씹어보고 일반적인 이론과 비교·판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문화를 매개로 얽힌 역사
이 책의 주제는 길가메시 서사시, 안티고네의 고뇌, 낙원의 역사, 민담과 동화, 혁명과 포르노그라피, 기차의 철학, 알코올, 디즈니 등 다양한 문화 장르를 통해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문화를 코드로 새로운 역사 해석을 시도하면서 인간의 고뇌와 존재 이유 등과 같은 철학적 질문들까지 가미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정치·외교·사상사 중심의 딱딱한 연대기적 서술을 벗어나 시대를 넘나들고 상상력과 호기심을 극도로 자극하는 역사책이 됐다.
그 속에서 김 교수는 책을 관통하고 있는 일관된 코드를 읽어냈다. 김 교수는 "저자는 문화를 독재, 계급지배, 저항, 제국주의를 보여주는 코드로 이해해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고 견해를 밝혔다. 얼핏 잡다하게 보이는 35개의 주제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저자는 주로 서구 사회의 문화가 지니고 있는 제국주의적 성격과 기독교·엘리트 문화의 지배 이데올로기적 성격, 노동자와 청년 등 소외계층 문화의 저항적 성격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것.
또 김 교수는 "저자는 서구문화를 보는 데 있어 대다수의 우리나라 서양역사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약점인 문화적 사대주의를 거부하고 뒤집어보고 있다는 점도 신선한 충격"이라고 덧붙였다.
▲유의해서 읽기
김 교수는 "역사는 문학"이라고 말했다. 인간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글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문학의 한 장르라고 봐야 한다는 견해다. 다만 주어진 사료를 바탕으로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 문학이라는 점에서 창작과 거리가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이 학교에서 배운 교과서를 바탕으로 역사에는 단 하나의 정답만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역사는 수학·과학과 달리 답이 없는 학문이라며 "역사에는 해석과 관점이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저자가 시도한 새로운 해석은 기존의 정답을 뛰어넘어 새로운 해석과 관점을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하지만 김 교수는 "이 책에는 빠지기 쉬운 함정이 하나 있다"며 "이 책은 세계사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 중 하나로 접한다면 굉장히 유쾌한 책이지만 이를 전부로 받아들일 경우에는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러 주제에 걸쳐 신화를 다루고 있는 부분이 많지만 역사적 사실이 신화에 반영되면서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에 대한 메커니즘을 소개하지 않아 독자를 혼란에 빠뜨릴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했다. 김 교수는 "신화에는 실재했던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전승을 쉽게 하는 서사시적 요소와 권위를 가지도록 하기 위한 신적 요소의 개입 등 변형이 이뤄지게 마련"이라며 "독자들은 이런 점에 유의해 신화를 이해한 뒤 저자의 주장을 읽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윤조기자 cgdream@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