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해후와 상봉

여행지에서 스쳐간 사람들 대부분은 우리네 생(生)에서 단 한번 우연히 같은 시공간에 있었을 뿐,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살랑 스치고 간 바람처럼,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처럼.

수년 전, 중국 실크로드 여행길의 버스에 함께 탔던 후이(回)족 가족이 가끔 생각난다. 후줄근한 차림새의 중년 부부와 대여섯 살 정도의 꼬마, 시어머니는 모처럼 대처 나들이를 하고 돌아가는 모양이었다. 커다란 자루 하나를 껴안은 채 어리둥절해 하는 모양새나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 모습이 바보스러울 만큼 순진해 보였다. 고비사막의 외길은 가도가도 적막한데 문득 차가 멈추고 후이족 가족이 내렸다. 길가의 허름한 오두막 한 채. 다시는 만날 일 없을 그 가족을 바라보며 잠시 까닭 모를 슬픔에 잠겼던 기억이 난다.

우리 삶이란 결국 만남의 연속이기도 하다. 색깔과 무늬가 다른 조각천들이 잇대어져 멋진 퀼트작품이 되듯 만남의 편린들이 모여 저마다의 삶을 이룬다. 그러기에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일생에 단 한 번이라도 꼭 만나고 싶은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면 축복받은 사람이다. 우연한 해후, 또는 기다림 끝의 상봉은 그래서 아름답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까까머리 고등학생 때 전국영어경시대회 우승 후 미 적십자사의 초청으로 미국에 갔을 때 잠시 묵었던 집의 아주머니를 43년 만에 한국으로 초청했다. 단지 나흘간 머물렀을 뿐인데도 가족처럼 돌봐준 정을 잊을 수 없었다는 반 장관, 구순 가까운 고령에다 휠체어에 의지하면서도 기꺼이 그 옛날 순박했던 한국 소년을 찾아온 벽안의 할머니. 상봉의 기쁨으로 활짝 웃는 모습이 모자처럼 정겨워 보인다.

우리 누구나에겐 꼭 한 번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소식 끊어진 옛친구, 이제는 희미해진 옛사랑, 돌아가신 부모님, 먼 고향마을, 때로는 다투고 미워했던 친구까지도... 세월과 함께 걸러지고 바래져 아련한 그리움으로만 남은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누군가의 가슴에 잊히지 않는 순수의 빛깔로 기억될 수 있다면 한세상 괜찮게 살았다 할 수 있지 않을는지.

논설위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