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논술에 관한 논술

"본고사에 대한 교육부의 기준이 나올 때까지 한시적인 휴전 상태에 접어든 지금, 서울대가 밉다고 해서 논술까지 싸잡아 도매금으로 비난하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어리석음을 범하지도 말고, 노무현 정부가 싫다고 해서 본고사 부활만이 우리 교육을 살리는 길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도 거두자."

최근 이욱연 서강대 교수가 '논술을 위한 변명'이라는 글에서 한 말이다. 이 교수는 이어 자신의 취지를 "통합형 논술이 본고사인지 아닌지 차원, 통합형 논술 교육을 지금 공교육에서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차원이 아니라 미래 사회를 살아갈 우리 청소년들에게 논술이라는 글쓰기 교육이 필요한지 합의를 도출하자는 것"이라고 밝히면서 논술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얼마든지 공감할 수 있는 주장이지만, 모든 교육 문제가 대학입시 경쟁 문제로 환원될 수밖에 없는 게 한국의 현실임을 어찌 부인할 수 있으랴. '논술'은 소중하게 여겨야 할 공부이겠건만 그것이 '변명'의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것 자체가 한국의 특수한 현실을 말해주는 게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심지어 논술은 단속의 대상이기도 하다. 최근 일부 대학 교수들이 상업 논술 학습지 집필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학원에서 직접 출제하거나 지도하자 교육인적자원부가 경고하고 나서는 일까지 벌어졌다.

논술을 둘러싼 갈등에서 '제3의 길'은 없는가? 발상의 전환을 해보자. 대학에선 논술 교육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놀랍게도 지금 대학엔 논술 교육이 없다. 뒤늦게 일부 대학들이 글쓰기 전담 교수를 채용하는 등 글쓰기 교육을 강화하고 있지만, 글쓰기가 곧 논술은 아니며 그나마 이제 겨우 시작하고 있는 중이다. 고교 논술을 논하기 전에 이게 더 잘못된 일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물론 고교 시절부터 논술 교육을 하는 게 바람직하며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학생들을 위해서도 더욱 그렇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다만 논술이 '국민 분열'을 낳을 정도로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대학에서부터라도 논술 교육을 제대로 해보자는 것이다. 아니면 고교에서 논술 교육을 하더라도 대학 입시만큼은 논술과 거리를 두어 '논술 전쟁'이 일어나는 건 막아보자는 것이다.

대학입시 문제는 취업 문제와 직결돼 있다. 바로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게 대기업들의 채용 방식이다. 지금 대기업들은 대학별 등급가중치를 부여하는 등 '간판 차별정책'을 쓰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개입해 그런 짓 하지 말라고 타일렀지만, 그 말을 들을 대기업들이 아니다. 그들은 교묘하게 캠퍼스 채용설명회에서부터 대학등급제를 쓰고 있으며, 주로 지방대 출신들이 이 몹쓸 대학등급제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지방대 학생들에게 용케 응시 기회가 주어졌다 해도 대기업이 면접을 빙자해 '간판 차별'을 저지르는 걸 막아낼 길이 없다.

대기업에게 차별의 소지가 다분한 면접 비중을 낮추고 논술 고사를 실시할 걸 권하고 싶다. 비용 때문에 꺼린다면 정부가 좀 보조해주더라도 논술 고사가 모든 대기업의 필수 과목으로 자리 잡으면 좋겠다. 이는 자연스럽게 대학에서의 논술 교육 강화로 이어질 것이다. 대기업들이 공정하게 실력 평가를 해준다면 그건 이른바 '패자부활전' 문화를 정착시켜 지금처럼 대학입시가 살인적인 '간판 전쟁'으로 전락하는 걸 제어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대기업들은 당장 현장에서 써먹을 수 있는 인재를 원하는 것 같은데 그 생각부터 고쳐야 한다. 지금처럼 기술·관리의 변화 속도가 빠른 세상에서 그건 소탐대실(小貪大失)이다. 논술 교육이 길러줄 수 있는 사고력·창의력·상상력 등과 같은 항구적 능력에 주목하는 게 기업과 사회 모두를 위해 바람직하다.

대기업의 기존 채용 방식을 외면하고선 아무리 입시정책을 바꿔도 지금과 같은 '간판 전쟁'은 달라지지 않는다. 교육부는 혼자서만 뛰려고 하지 말고 산업·기업정책에 눈을 돌려 그 연계효과에 주목해야 한다. 진정한 실력경쟁이 가능하고 패자부활전이 정착된 사회라면, 지금처럼 논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싸울 일은 없을 것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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