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학자의 길에 큰 매력을 느꼈었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문예반 활동을 하며 헌 책방을 자주 들락거렸고, 대학을 다닐 때는 은사로부터 교수가 되라는 권유를 받은 적도 있다. 물론 공무원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대학을 다닐 당시만 해도 공직은 권력의 전유물이다시피 했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실력으로 뽑는 것이 아니라, '빽(배경)'이 바로 공직 등용의 길이었다. 죽을 때도 '빽'하고 죽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4·19로 새롭게 탄생한 민주당 장면(張勉) 정부는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름대로 개혁을 시도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당시 민선시장으로 취임한 김종환 대구시장은 지금까지의 관행을 깨고 처음으로 공개경쟁을 통해 공무원을 채용했다. 새로운 시대를 갈망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응시했고, 혼란한 나라의 정치와 행정에 울분을 삭이고 있던 나도 꿈과 희망을 가지고 그 대열에 합류했다.
공무원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5·16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하루 아침에 현역 군인이 시장으로 임명되었다. 군인 시장은 부임하자마자 혁명 공약을 암송케 하는 등 시청 분위기를 군대식으로 바꾸려고 했다. 군인 시장은 3년 만기제대하지 않은 직원들을 해임시키려고 하였다. 그 대상은 의병제대나 의가사제대가 대부분이었는데, 나같이 학보제대(대학 재학 중에 입대한 경우 1년 반 복무한 뒤 제대)한 사람들도 포함되었다. 나는 아무리 군사정권이라 할지라도 행정을 집행하는데 있어서는 법을 초월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시장 면담을 요청했다. "저는 합법적으로 제대하고 공개 채용으로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해임시키는 법적 근거를 알고 싶습니다."
신참 직원의 당돌한 항변에 군인 시장은 "무슨 법적 근거?"하면서 소리를 쳤고, 시장실은 야단이 났다. 고함소리를 듣고 비서들이 몰려와 나를 밖으로 밀어냈다. 지금 생각하면 그분은 강직하고 개혁적이었던 것 같다. 직원들의 군 이력을 문제 삼은 것도 당시의 공무원 중에는 부적절한 방법으로 제대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 일이 있은 후 대구시에서 계속 근무해야 하는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였다. '새까만 졸병이 시장과 맞섰다'는 소문도 부담이 되었지만 무엇인가 업적을 이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군인 시장과 법과 정의의 가치를 고뇌하는 나의 양심 사이에서 깊은 갈등을 겪어야 했다.
그즈음 경상북도에서도 공개채용 시험 공고를 냈다. 나는 새 출발을 하는 마음으로 응시를 했고 고향 근무를 희망해 청도군에서 다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의근 경북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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